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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라는 이름의 통증

첫 번째 바늘, 골수를 향해

by 선옥

기계가 내뱉는 일정한 소음.

‘삑—’ 하고 들리는 알람음.


의료진들의 낮은 목소리 속에서도
그 공간은 이상할 만큼 분주하고 치열했다.


그 속에서 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잃었다.

해가 떴는지 졌는지조차 알 수 없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잠들고 깨어났지만


그 간격이 몇 시간인지 며칠이 지난 건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의식은 희미하게 떠 있거나

가라앉기를 반복했지만


면회 시간이거나 치료를 받을 때만큼은
의식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입원 첫날, 응급실에서 CT와 MRI를 촬영했지만

보다 정밀한 진단을 위해 중환자실에서
조직검사와 골수, 척수 검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입에 기계호흡기를 문 채, 나는 옆으로 돌아누워
새우처럼 등을 말아야 했다.

돌아누운 내 허리 위로 푸른 수술포가 덮였고,
곧 채취 부위에 소독액이 뿌려졌다.


주치의는 말했다.
“골수검사를 먼저 하고,
척수검사는 다음 날 진행할 예정입니다.”

소독액이 마른 뒤 의사는 내 장골 뒤쪽,
후상장골극 부위를 손으로 눌러 위치를 확인하더니

그곳에 마취주사를 놓았다.


“조금 따끔할 거예요.”

마취 주사가 들어갈 때는 말 그대로 따끔했지만,

마취액이 퍼지면서 허리 아래로 묵직한 압박감과
예상보다 큰 통증이 밀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취된 부위에 다시 바늘이 삽입되었고,

이번에는 그 통증의 강도가
마취 주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트레핀이라는 바늘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뼈를 뚫고 들어왔다.


골수액과 골수조직을 채취하기 위해,

바늘은 마치 드릴처럼 회전하며
뼛속을 파고들었다.


마취를 했음에도

뼈가 쑤시고 울리는 감각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양손과 발에 힘을 꽉 주고,
온몸으로 고통을 참았다.


마취를 맞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통증은 컸고, 바늘이 뼈를 쑤시며 들어올 때마다

내 몸도 함께 움직였다.


한쪽이 끝나자 곧바로 반대편 골수 채취가 이어졌고,

꽉 쥔 손과 발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며

그저, 제발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골반의 심한 통증 속에서

“검사가 끝났습니다.”
라는 말에 잠시 안도하던 찰나,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한김에, 요추천자술까지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입에 호흡기를 문 채로 고개를 격하게 흔들며

‘싫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검사는 그대로 이어졌다.


차갑고 미끌거리는 소독솜이 허리뼈 위를 지나갔다.

곧이어 따끔한 주사바늘, 그리고 마취액이

허리 전체에 퍼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척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바늘이
요추 4번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


뇌척수액이 흘러나와야 했기에

바늘을 빙빙 돌려가며 허리 안을 쑤셔댔다.


골수검사보다는 덜 아팠고 금방 끝났지만,

이미 한계를 넘긴 내 몸은 요추천자술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검사가 끝난 뒤, 간호사 선생님은 시술 부위 아래에

모래주머니를 깔아주었고, 나는 그대로

4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고 누워 있어야 했다.


출혈을 막기 위함도 있었지만, 뇌척수액이 빠져나간 뒤

그 양이 일시적으로 줄어들면서 뇌가 아래로 당겨져

뇌막이 자극되는데, 이때 머리를 들거나 일어설 경우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절대 머리를 들지 말고

4시간 동안 평평하게 누워 있으라고 당부했다.


한바탕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뒤,

의료진들이 시술 도구를 정리하며 떠나고,

중환자실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그 상태로 잠에 빠졌다.

잠에서 깬 것은

허리에 올려진 모래주머니로 인한

통증 때문이었다.


시계를 보니 3시간 30분이 지나 있었다.

4시간이 채워지려면
아직 30분이 남아 있었기에

4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데


그 남은 시간은 앞선 3시간보다

훨씬 더 길고도 고통스러웠다.


겨우 30분이 지나고, 나는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눌렀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와 모래주머니를 빼주셨다.


골반과 허리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모래주머니가 빠진 것만으로도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편안해졌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이 이완되며,

나는 다시 잠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하루가 흘렀는지,

한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의사 선생님이
병실로 들어오셨다.


“암세포가 폐에도 전이되어 있어, 조직검사를 하기 위해
가슴에 조직을 채취할게요.”


나는 다시 공포에 빠졌다.

골수검사에서 겪었던 극심한 고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가슴에 주사바늘이 놓였고,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생검 바늘이 들어왔다.


하지만, 골수검사를 겪은 탓일까.

그 순간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고,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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