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했던 건 체면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갖은 검사를 마친 뒤, 중환자실에서의 일상은 꽤 단조로웠다.
시간이 되면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기계호흡기에 낀 가래와 같은 이물질을 석션으로 뽑아주셨고, 면회 시간이 되면 가족을 비롯해 이웃과 친구들이 찾아와 주었다.
내 상태가 점차 안정되면서 묶였던 손과 발은 풀렸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며 의식도 또렷해지는 시간이 점차 많아졌다.
중환자실의 환자 대부분은 노인이었기에, 그곳의 모든 분들은 어린 내게 친절과 관심을 베풀어 주셨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내 머리를 소녀처럼 묶어주며 장난을 치기도 했고, 매시간 청소하러 와주시는 여사님께서 건네주시던 아침 인사와 날씨 소식은 중환자실에서도 시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나자,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 방에 오셔서 머리를 감겨주셨다.
‘Intensive Care Unit (ICU)’, 집중치료실이라는 말처럼 의료진은 환자를 집중적으로 돌보았다.
COVID-19가 돌기 전부터 간호는 물론 간병까지 통합적으로 케어해주던 의료진의 노고에 대해 나는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과 육체의 의식이 또렷했던 나는 누군가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 굉장히 송구스러워, 몸도 마음도 편하지 못했다.
그런 내게 의료진은 기저귀를 채우고 볼일을 보라고 하셨는데, 기저귀에 볼일을 볼 바에야 참고 말지, 17살 소년이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려 할 리가 있나.
다행스럽게도 소변은 몸을 옆으로 뉘어 소변통에 해결할 수 있었고, 대변은 중환자실에서 나올 때까지 욕구가 들지 않아 잘 참을 수 있었다.
기저귀는 17살이었던 나뿐만 아니라, 67살이 될 나 또한 죽어도 차기 싫어할 것이다.
여담으로, 나의 친할머니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부인암 판정을 받고 자궁을 적출하게 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소변줄을 달고 지내셨다.
수술을 받고 입원해 계시는 동안 아버지께서 잠시 간병을 하셨는데, 기저귀를 차고 병실에서 대변을 보시던 할머니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병실 내에 퍼지는 자신의 대변 냄새로 인해 병실의 환자, 보호자, 의료진 모두에게 죄인이 된 할머니의 야윈 모습은 평소보다 한없이 움츠러들어 보였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우리 '복용'이가 내 대변을 다 받아가며 닦아줬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이렇듯 사람은 자기 몸을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통해 독립성과 자율성을 느낀다.
기저귀를 차고 대소변을 보게 되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자율성의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간호사나 보호자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상황은 사적인 부분이 타인에게 노출된다는 느낌을 주며, 이는 성인의 체면과 자립성이 무너졌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스스로 존엄을 잃었다고 느끼며 인격이 침해당한 듯한 감정까지 경험하게 된다.
그렇지만 실제 존엄성은 신체적 상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환자가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도, 그를 향한 존중과 공감이 있다면 그 사람의 존엄은 지켜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기에 나의 아버지에게 받은 존중과 공감, 사랑 덕분에 할머니도 스스로의 존엄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대변을 기저귀에 보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의료진의 존중과 공감, 그리고 가족의 사랑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스스로의 존엄을 지켰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