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만의 첫 식사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은 또다시 분주했다.
하지만
그 풍경이 썩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첫날 중환자실로 실려 왔을 때와 달리,
이번엔 내 의식이 확연히 또렷했고
몸 상태도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내 침상 위로 주렁주렁 달려 있던
항생제와 영양제를 비롯한
각종 약물들은 대부분 빠져 있었다.
내 기도를 통과해 호흡을 대신해 주던 기계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입을 벌리고 숨을 쉬던 불편함도 사라졌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물을 받아와 내 머리를 감겨주었고,
그동안 씻지 못했던 얼굴도 닦아주며
양치까지 도와주었다.
손등엔 여전히 주삿바늘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호흡기를 벗고
입을 다문 채 코로 숨을 쉬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얼마나 자유롭던지.
그저 병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잠시 후 식사가 나왔다.
열흘 가까이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했던 터였다.
그동안은
정맥영양(IV)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았기에
위와 장의 연동운동이 일시적으로 멈춰 있었다.
소화기관의 기능을
점진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묽게 끓인 전분 위주의 미음식이 나왔다.
수프보다도 훨씬 묽은
국 형태의 죽.
아무런 건더기도 없는 국과 간장.
반찬은 따로 없었다.
분명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이날 먹은 미음은
정말 맛있었다.
씹는 맛은 없었고
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싱겁기 그지없는 식사였지만
열흘 만에 혀로 느끼는 음식의 맛은
그 자체로 놀라웠다.
단맛도, 짠맛도
또렷하게 느껴졌다.
특히 건더기 하나 없는 식혜가
종이컵에 한 잔 담겨 나왔는데
그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
처치실 대기 중
아버지께
“엄마가 해주시던 식혜가 먹고 싶어요.”
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중환자실 첫 식사에
정말로 식혜가 나온 것이다.
나는 부모님이 병원에 부탁해 넣어주신 줄 알았다.
나중에 부모님께 여쭈어 보니
식혜는 그날 병원에서 우연히 제공된 것이었다.
그 이후로
병원 생활을 6년간 반복했지만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식혜를 받아보았다.
그렇게 잊지 못할
중환자실에서의 첫 끼를 마친 뒤
나는 혈액종양내과로의 전실을 준비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준비한 건 아니었다.
의료진과
보호자인 부모님께서
모든 것을 조용히 준비하고 계셨고
나는 드디어 퇴원을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ICU에 있는 동안 24시간 하나부터 열까지
성을 다해 간호와 간병을 해주셨던
의료진 분들께 감사와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아쉬움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호전되어
전실을 하게 되는 거였기에,
나는 퇴원하는 줄로만 알았기에
기쁜 마음으로
“밖에서 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뵈어요”라며
의료진분들과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
그렇게 나는
회복과 오해, 안도와 긴장을
동시에 안은 채
중환자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