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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내가?

아직은 실감 나지 않았던 이름, 백혈병

by 선옥

빵빵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내 얼굴을
손으로 만져보며 놀란 나는
급히 병실로 돌아가
부모님께 얼굴을 보여드렸다.

“제 얼굴 좀 보세요.

왜 이렇게 된 거죠?
얼굴에 살이 엄청 쪘어요.”

부모님은 그저 웃으시며
“계속 누워만 있고 치료를 받아서 부은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곧 퇴원하는 줄만 알고 있었기에

‘치료가 끝나면 부기도 빠지겠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어느 정도 병상 정리가 마무리되자
아버지는 출근을 위해 병실을 나섰고,
어머니만 남아 병간호를 하시게 되었다.


잠시 뒤,
병원 측에서 ‘코디네이터’라는 직함의 간호사 선생님이

우리 병실로 찾아왔다.

코디 선생님은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먼저 차분히 소개해주셨다.

환자의 치료 과정 안내와 스케줄 조정,
보험과 지원 제도 상담,
필요시 조혈모세포이식에 대한 설명까지.

진단부터 치료, 회복까지
의료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치료의 길을 안내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말씀하셨다.


이날, 나는 내 병명을 처음으로 들었다.

T-림프구성 급성 백혈병
(T-cell Acute Lymphoblastic Leukemia, T-ALL)

림프구 중 T세포 계열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악성 혈액암으로

주로 소아나 청소년에게 발병하지만
청년기나 중장년기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코디 선생님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항암 치료로 인해
면역 수치가 매우 낮아진 상태라
음식과 환경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술과 담배는 당연히 금지였다.

나는 미성년자인 데다
애초에 술·담배를 해본 적도 없기에
그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음식이었다.

육회나 회는 물론이고,
생야채도 금지였다.

피클이나 김치류처럼
발효된 음식도 먹을 수 없었다.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못 먹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설명을 마친 뒤
“혹시 더 궁금한 점 있나요?”라고 묻는 코디 선생님께
나는 두 가지를 여쭈었다.

“앞으로 치료는 얼마나 해야 하나요?
그리고 이 병의 원인은 뭐예요?”


그 질문에
선생님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하셨다.

“치료 기간은
앞으로 경과를 보면서 진행하게 될 거예요.
암세포가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반응이 어떤지에 따라요.”

그리고는
조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까지는
이 병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어요.”


내가 이 병에 걸리게 된 이유를 물어본 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같은 마음이 아닌

그저 단순히 병의 원인이 궁금해서였다.

이게 유전적인 질병인지 환경 때문인지

원인을 안다면 후에 가족이나 내 자녀들이

걸리지 않게 할 수 있을 테니깐.


가끔 미디어를 통해 암환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왜 하필 내가 이런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조금 불편했다.

‘그럼 다른 사람이 걸렸어야 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어머니는 면회 때마다 말씀하셨다.

“수영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다 잘 될 거야.”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죽는다’ 거나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 같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학업은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1년 유급하면 다시 따라갈 수 있을까’
‘군인이 되고 싶은데 수술은 하지 않겠지’

그런 걱정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조금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 당시에 나는 몰랐다.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건,

그때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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