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면 끝날 줄 알았지 6년 걸릴 줄 알았나 누가
그렇게 내 오른쪽 가슴엔
피를 빼는 관 하나, 약물을 넣는 관 하나.
두 개의 관이 주렁주렁 매달리게 되었다.
대신 양손은 자유로워졌다.
항암치료 전에는 손등에 주사를 꽂고 있어 움직임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옷을 갈아입거나 씻는 것도 훨씬 수월했다.
병원은 중앙난방 시스템을 이용해
한겨울에도 실내 온도가 상당히 높았다.
밤새 땀이 나 잠옷을 갈아입는 일이 잦았는데,
양손을 쓸 수 있다는 건 큰 자유로움이었다.
혈액병동의 하루는
이른 새벽 피검사로 시작된다.
야간 근무를 마친 간호사 선생님들이
새벽 5시쯤이면 병실을 돌며 환자들의 혈액을 채취한다.
중심정맥관(C-line)을 삽입한 환자들은
그 관을 통해 간단히 채혈하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들은 매일 새 혈관을 찾아야 했다.
혈관을 찾기 위한 주삿바늘에
병동 대부분은 새벽이면 잠에서 깨어
조용하게 신음했다.
전날 C-line을 심는 고통에 보상이라도 받듯
나는 편안하게 채혈을 할 수 있었고,
검사 결과는 오전 9시 전, 교수님 회진 전에 도착했다.
작은 종이 위에 인쇄된 수치들.
백혈구, 혈소판, 헤모글로빈, 호중구, C-반응단백.
간호사 선생님께서 각각의 수치를 설명해 주셨다.
백혈구는 면역력과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
혈소판은 낮아질 경우 출혈 시 피가 멎지 않아, 수혈 여부를 판단하는 수치.
헤모글로빈은 빈혈 여부를.
호중구는 수치가 500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감염 위험이 매우 높아 무균실로 병실을 옮기며.
C-반응단백은 몸에 염증이 있을 때 수치가 오르는 지표였다.
그날 종이에 적힌 숫자들은 내 몸속 면역계가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곧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께서 병동으로 회진을 오셨다.
피검사 결과를 보며 나와 어머니에게
“한 달 정도 경과를 지켜보며 항암제를 투여해 보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한 달이면 치료가 끝나
곧 퇴원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한 달’은
앞으로 수십 번 반복될 항암 사이클 중
첫 번째 사이클이 한 달 뒤에 끝날 거라는 뜻이었다.
만약 그때 내가
병원 생활이 앞으로 6년이나 이어질 거라는 걸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잘 버틸 수 있었을까.
17살 당시의 나라면
6년이라는 시간에 눌려
치료 시작부터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루빨리 퇴원해
늦어진 학업을 따라가
꿈이었던 공군이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도 또래 아이들보다 늦어졌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는데
6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