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참는 감정은 무엇이며, 왜 참게 되는 걸까?
5일 차 일기의 주제는 며칠 전 썼던 3일 차 일기, “요즘 내가 자주 피하고 있는 감정이나 일은 무엇인가?”와 비슷하다 느꼈다. 당시 나는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들여다봤고, 이번 질문을 받고 나서 ‘내가 부러움을 참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돌아보니, 나는 부러움을 참으려 한 것이 아니라, 부러움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피하려 했다. 즉, 감정을 ‘억누른 것’이 아니라 ‘없애려’ 한 거기에 부러움이란 감정을 참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참다’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감정이나 고통, 욕망 따위를 억누르거나 견디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거나, 행동을 자제하다.
이 정의대로라면, 어떤 감정이나 욕구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그것을 억누르며 행동을 멈추는 것이 ‘참는 상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참으며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상황을 회피하거나 감정을 바라보는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운전을 하다 뒤차가 크락션을 울릴 때 순간적으로 화가 올라오더라도, 그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그냥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는 편이다. 또는 어릴 적 나를 괴롭혔던 친구를 길에서 마주쳤을 때, 감정의 동요는 있지만 오래 머무르거나 그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물론 아직 바라보지 못한 트라우마나 오래된 분노도 있지만, 그것들이 올라오는 일은 드물다.)
대신, 나는 육체적인 불편함을 참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평소에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 누군가가 내게 부탁을 하면 그 부탁을 거절해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몸이 힘들더라도 그 부탁을 들어주는 쪽을 택한다. 결국 내가 참는 것은 감정보다는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감수하는 나의 불편함, 즉 내 몸의 피로, 내 시간의 소진, 나의 여유다.
나는 감정을 참는 사람이기보다, 불편함을 참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육체적 피로든, 시간의 희생이든.
어쩌면 그것도 ‘감정’ 일지 모른다.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참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