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기분 좋게 만든 아주 작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마가 끝났음에도 일주일째 이어지는 비로 낮마저 흐린 날, 주유를 하기 위해 눈에 들어온 주유소에 들렀다. 그곳에서 익숙한 목소리와 처음 듣는 멜로디가, 놀랍도록 좋은 음향으로 흘러나왔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그 흐린 배경 위로 맑고도 선명한 음악이 덧입혀졌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태성음향'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주유소 옆 정비소나 편의점, 카페가 함께 있는 건 익숙한 풍경이지만 음향가게가 함께 있는 건 처음 보는 조합이었다
음향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답게, 사운드는 정말 탁월했다. 주유를 마친 뒤 시동을 켜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오디오 너머 차 안으로 스며드는 그 노랫소리가 어찌나 선명하고 맑던지 그냥 지나치기가 아까웠다. 닫힌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사운드는 차 안에서 더욱 울려 퍼졌고, 차 안의 쾌적한 에어컨 바람과 앞 유리에 맺힌 빗방울까지 모든게 완벽했다.
마침 비 때문인지 주유소는 한적했고, 내 뒤로 다른 차가 없어 나는 시동을 켠 채로 잠시 노래와 가사를 음미하였다.
“찻잔에 눈물이 떨어지는데
그대는 오지를 않네
이 비가 그치면 그대 와줄까
비야 내려오지 마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슬프기는 하지만
창밖을 보며 편지를 써야지
비가 내린다고, 비가 내린다고”
가사를 검색해보니, 신승훈님의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라는 곡으로 1990년 11월 발매한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타이틀인 앨범의 수록 곡 중 하나였다.
요즘도 흥겹고 중독성 있는 좋은 노래들이 많지만, 나는 여전히 80~90년대 감성이 담긴 이 시절의 노래들이 좋다. 멜로디도 좋지만, 어쩜 이렇게 아련한 가사를 서정적으로 잘 풀어 냈을까. 멜로디도 가사도 마음에 오래 오래 머물러 긴 여운을 준다.
발매 당시엔 대중들이 들었겠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잊고 지낸 이 노래를 이런 우연한 순간에 만나게 되다니. 마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듯, 뜻밖의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찼다.
주유소 한켠에서의 작은 콘서트. 덕분에 오늘은 더 기분 좋게 길을 나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