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2014년에 방영된 드라마 ‘개과천선’의 주인공 김영민은 거대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로 부자들만을 변호하는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기억상실증을 겪은 후에는 개과천선된 정의로운 변호사로서의 새 삶을 살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번번이 실패한다. 아테네의 도움으로 잠든 상태에서 거지꼴의 노인으로 이타케에 등장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디세우스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가장 먼저, 20년 전에 키웠던 개 ‘아르고스’가 오디세우스를 알아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자신과 관계를 맺는 모든 타자의 기억 속에 편재되어 있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김춘수의 시 ‘꽃’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을 타자의 기억 속에 우리의 정체성이 편재되어 있다.
우리는 게임에서 리셋을 누르면 초기화되어 다시 시작되듯, 우리의 삶도 리셋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에서 좀처럼 발생되기 어려운 기억상실증에 관한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의 본질은 타자들 사이에 조각나 있고, 누군가의 기억이나 경험, 감각에 의지해 존재한다. 개 아르고스는 냄새로, 유모 에우뤼클레이아는 손의 감각으로, 아내 페넬로페는 침상이라는 비밀의 언어로 오디세우스의 정체성을 복원한다.
따라서 정체성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과, 우리가 남긴 상처와, 공유한 추억과,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 속에 분산되고, 새겨져 있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를 알아본 타인들의 응답 속에서 그의 정체성이 재인식되고 회복되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삶이 리셋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우리는 너무도 다양한 타자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그 타자의 기억 속에 우리의 정체성이 편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삶을 리셋하려면, 그 다양한 타자에 편재되어 있는 기억까지도 리셋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을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그들 타자의 기억에 우리 삶의 조각을 새기고, 그들은 우리의 기억에 그들 삶의 파편을 새긴다. 우리의 정체성은 공간적으로는 타자의 시선 속에, 시간적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 속에 흩어져 있으며,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즉, '나'라는 이름은 한 지점에 머물러 있지 않다. 사람들 사이의 시선 속에, 잊힌 과거와 다가올 미래 속에, 흩어지고 반짝이며, 매 순간 새로 태어난다.
우리 사회에는 상처나 고통이 시간이 지나면 완화된다는 의미로 “세월이 약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시간이 흐르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달라져, 같은 상처도 다른 무게로 느껴짐을 표현하고 있다. 즉,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재편성하여, 고통의 중심을 옮기거나 약화시킨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세월은 존재의 형태를 해체하고 재배열한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 사이의 무게 중심을 옮기며, 정체성을 다른 모습으로 바꾼다. 이 변형은 때로는 상실처럼, 때로는 성숙처럼 느껴진다.
세월은 어떤 면에서는 무자비한 침식자다. 기억을 지우고, 가능성을 줄이며, 육체를 약하게 한다. 다른 면에서는 은밀한 창조자다.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오래된 고통을 옅게 만든다.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는 존재는 자신을 새로운 빛깔로 물들인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조각일까, 파편일까? 조각은 전체의 일부를 뜻한다. 조각 하나만 봐서는 전체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히 하나의 원형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음을 전제한다. 삶을 조각이라 부를 때는, 우리는 어느 순간 흩어져 버린 원래의 전체를 상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원래 나라는 큰 형상의 일부에 있던 조각이다.
한편, 파편은 단순히 부서진 일부가 아니라, 우연히 흩어져 버린 흔적이다. 원래의 형태가 무엇이었는지 불분명하고, 파편들끼리도 맞물리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예기치 못한 사건들의 기억은 서로 맥락 없이 흩어진 채 남아 있는 파편이다.
조각은 연속성과 잃어버린 전체의 감각을 품고 있으며, 파편은 불연속성과 우연성의 감각을 품고 있다. 우리의 삶은 이 두 속성을 동시에 지닌다. 어떤 기억은 서로 이어져 하나의 조각들로 묶이고, 어떤 경험은 그 이야기 바깥에서 낯선 파편으로 남는다. 결국 우리의 삶은 이어질 수 있는 조각과, 끝내 맞춰지지 않는 파편이 흩어져 있는 모자이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