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김민형의 ‘세상은 아름다운 난제로 가득하다’를 읽다가, ‘영국 기억의 가치’에 눈길이 머문다. “해당 국가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만 의미 있는 가치가 왕실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그런데도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영국 왕실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어느 정도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통과 지속이라는 ‘기억의 가치’ 때문일 것이다. 영국 왕실은 미래로 나아가는 현재의 틀이 긴 과정과 절차의 산물임을 상징한다.”
나는 책을 덮고, 그렇다면, 한국인 기억의 가치는 무엇일까 사유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눈치’라는 문화적 코드다. 한국인이 외세의 지배와 독재 권력의 감시에서 오랫동안 핍박받은 역사적 산물이 바로 눈치 아닐까? 이러한 눈치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 체득된 것이다. 총구와 검열 속에서 민중들이 권력자를 바라보며 익힌 생존의 감각이다.
외세의 지배 아래에 말은 자신을 해칠 수 있는 화근이었고, 침묵은 가장 안전한 언어였다. 권력자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누구를 신뢰하고 있는지, 말보다 먼저 읽어야 했다. 그래서 한국인은 얼굴을 읽는 민족이 되었고, 분위기를 해독하는 민족이 되었다. 눈치는 논리가 아니라 직감이었다.
독재의 시간 속에서 눈치는 더 정교해졌다. 권력은 말을 통제했고, 그 틈에서 눈치는 진화했다. 눈치는 자기 검열의 기술이자, 타자를 탐색하는 기술이다. 한 사람의 눈빛 안에서 위험과 안전을 동시에 읽어내는 능력인 것이다. 이것은 내면화된 레이다였다. 그래서 눈치는 서글프다. 한국인의 눈치는 외세와 독재가 빚어낸 슬픈 지혜였다.
이 슬픈 지혜 덕분에 한국인은 정부나 공식적인 기관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고, 집단 지성을 수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나 자신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발동된 휴교령에 엄청나게 당황했다. 대학 당국은 전면적으로 학교 출입을 금지하는 휴교령을 발표했다. 나는 공식적인 휴교령은 귓등에도 듣지 않고, 학교에 들어가서 빠릿빠릿한 선배들을 찾아다녔다. 여러 선배에게 들은 조언을 집적해서, 행동 지침으로 삼았다. 이러한 지침 덕분에 나에게 첫 번째로 닥친 챌린지를 무사히 넘겼다.
한국인들에게 챌린지가 닥친다면, 대부분 나랑 비슷한 패턴으로 극복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공식 발표가 나더라도,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요령 좋은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보면, 골목에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우리의 신뢰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생성되었다. 국가가 아니라 이웃의 경험으로 축적되었다.
한국인의 집단 지성은 거대한 토론장이 아니라, 직접적인 귓속말 네트워크에서 자랐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제도보다 감각으로 시작되었다. 논리가 아니라 공감이 먼저였다. 촛불은 지식의 결과라기보다, 공감의 결집이었다. 눈치는 두려움의 기술이었지만, 그 두려움은 연결의 감각으로 발전했다.
눈치의 문화적 코드가 실생활에 체화된 것이 ‘교통 약자석’이 아닐까? 지하철에 붙어 있는 교통 약자석 스티커에는 임신부, 장애인, 고령자를 그리고 있다. 교통 약자석은 법적 약자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정서적 약자를 위한 자리다. 눈치는 두려움에서 태어났지만, 교통 약자석이라는 연대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한국인은 눈치의 지혜로 코로나 팬데믹을 어떤 국가보다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보이지 않는 폭풍 앞에서 한국인은 과학만이 아니라, 눈치라는 기억의 감각으로 잘 살아남았다. 이것은 마스크보다 먼저 움직인 배려였고, 백신보다 먼저 작동한 태도였다.
한국인은 규칙을 읽기 전에 분위기를 먼저 감지한다. 한국인은 누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분노보다 먼저 불안을 흘렸고, 눈치라는 거리 두기를 강력하게 발동했다. 서구 사회에는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논쟁이 심했지만, 한국에서는 관계와 책임이 먼저 움직였다.
서구 언론은 마스크를 쓴 한국인들을 조롱했지만, 한국인에게 마스크는 의료 도구라기보다는 서로에게 보내는 무언의 배려였다. 그리고 마스크 뒤에서 조용히 인내했다. 코로나를 이겨낸 진정한 힘은 눈치의 지혜였다. 눈치는 침묵의 기술이었지만, 팬데믹 앞에서는 연대의 서사가 되었다. 한국인은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내가 먼저 조심하면, 우리는 함께 살아남는다.”
세상은 아름다운 난제로 가득하다: 김민형/김영사/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