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2026년에는 내가 20여 년 동안 주로 해왔던 특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특허는 발명자가 자신의 독창성을 기재한 명세서를 출원하면, 특허 심사관이 객관적으로 평가해 특허권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내가 창작했다”라고 선언하면, 바로 인정되는 저작권과는 달리, 특허권은 “국가가 발명했다”라는 것을 인증해 주는 제도다. 개인의 독창성이 공적인 권리로 전환되는 지점에, 특허 심사관이 서 있다.
특허는 창작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고 인정해 주기 때문에, 특허권을 획득하고 나서, 사업상 사용하지 않더라도 제재 규정이 없다. 반면에 상표권은 획득하고 나서, 3년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그 상표를 사업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사람에게 양도해야만 한다. 물론 아무에게나 양도되지는 않고,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 가장 먼저 신청한 사람에게 양도된다.
특허는 발명을 이미 세상에 등장시킨 것, 자체로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고 인정돼, 사업상 사용하지 않더라도 특허권은 존속된다. 특허권은 창작의 공로에 대한 훈장으로 수여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상표는 이미 사회에 존재하는 기호, 문자, 도형, 입체적 형상 중 어느 것에, 자신의 사업에 사용하기 위해서 독점권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래서 상표의 기호, 문자, 도형, 입체적 형상에는 독창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상표의 세계에서는 상표권자가 양자를 들이듯, 기호, 문자, 도형, 입체적 형상을 자신의 지배 영역으로 끌고 온 것으로 본다. 이후에는 양자에 대한 양육 책임을 묻는 것이다. 정상적인 양육을 하지 않으면, 파양 결정을 하고, 새로운 부모에게 입양된다.
한편, 나는 변리사로 일하기 전에는 반도체 회로 설계를 담당하는 엔지니어였다. 그 당시에는 내 직무에 관련해서 특허를 출원한 적이 있지만, 그 특허 내용에 대해서는 머리가 하얗다. 나중에 변리사가 되고 나서, 내가 작성했던 특허 공개 문서를 찾아보니, 이것이 과연 내가 작성했던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가 2003년 불현듯 특허를 쓰고 싶어 하게 만드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당시 나는 특허법인에서 일하고 있었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주구장창 TV 야구 중계만을 시청했다. 그런데 어느 날 TV 리모컨이 사라져 버렸다. 문제는 야구 경기는 10분 간격으로 이닝이 바뀌면서, 너무 자주 CF가 방영된다는 것이었다. TV 리모컨이 있을 때는 매 이닝이 끝나는 즉시 리모컨 버튼을 눌러, 다른 야구 경기 채널로 돌릴 수 있었지만, TV 리모컨이 사라진 뒤에는 매번 내가 직접 TV 앞으로 가서야 채널을 바꿀 수 있었다. 미칠 것 같았다.
드뎌 10일 후에, 냉장고 과일 칸에서 TV 리모컨을 찾았다. 너무 허탈해서, 화도 나지 않았다. 그 순간, 이걸 해결할 수 있는 특허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관련 선행 기술을 검색했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좌절했다. 관련 선행 기술이 이미 20건 정도 존재했다. 그중 2건 정도는 무릎을 꿇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런데 왜 재들은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 거야?”라고 불만을 토로하며, 이 해프닝을 마무리했다.
그렇다고 해도 특허 출원에 대한 욕망이 완전히 휘발되지는 않았다. 이 욕망을 완전히 소진시킨 사건은 그 이듬해에 발생했다. 아내는 내 복을 비는 마음으로 핸드폰에 순금 한 돈 돼지를 매듭으로 연결해 줬다. 평소에 술을 즐겼던 나는 그 핸드폰을 택시에 두고 내렸다.
친구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나에게 낙담을 던졌다. “네 순금 돼지 핸드폰은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현실이 됐다. 이번에는 핸드폰과 내 벨트에 커플의 무선 통신 기구를 부착해서, 1미터 이상 떨어지면, 알람을 울리는 방식의 특허를 구상했다. 관련 선행 기술은 저번의 3배에 이르렀다. 나는 즉시 GG를 선언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 곁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유능한 비서가 이미 당도해 있다. 우리가 직장일, 가정일, 취미 생활을 영위하다가, 불편한 점을 발견한다면, 발명의 단초를 찾은 것이다. 제일 중요한 점은 불편한 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 해결 방식에 독창성을 발휘하면 된다. 문제 해결 방식의 독창성을 서로 공개하며, 다양함 속에서 다른 삶의 인사이트를 빌릴 수 있다. 문제 해결 방식의 독창성은 단박에 완성되지 않으며, 각자의 각축 속에서 발전되는 에너지가 발산된다. 이제는 독창성을 자랑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