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에 빠져있다. 이러한 공포를 현실적으로 반영한 가장 직설적인 단어는 아마도 ‘블루칼라 보난자(Blue-collar Bonanza)’일 것이다. 인공지능의 쓰나미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블루칼라 일자리에서 노다지가 터진다는 뜻이지만, 웃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사무실을 비우고, 로봇이 책상을 접더라도, 현장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숙련공은 인공지능으로 가장 늦게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감과 안도감이 공존하는 신조어다.
현장은 교본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배관은 설계도와 다르게 배치되어 있고, 전선은 누군가의 급한 손질로 이상한 방향으로 숨겨져 있다. 용접 부위의 물질도 사진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과 다른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현재 AI로부터 가장 안전한 분야라고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직업은, 배관공, 전기기사, 용접공이다. 결국 인공지능으로부터 가장 늦게 대체되는 직업의 공통점은 자신의 손 감각으로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현장의 문제를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무언가의 자격증을 발급할 때, 현장의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기보다는, 이론적인 지식 능력을 평가했다. 피아노 연주를 잘하는 사람을 선발해야 됨에도, 실제 피아노 연주 실력을 테스트하기보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전기나 경력을 잘 아는 사람을 선발하는 것과 유사하다. 피아노 앞에 앉혀보지도 않고, “베토벤은 언제 귀가 먹었나요?”나, “모차르트는 몇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습니까?”를 물어보고, 이런 잡지식을 잘 아는 사람을 선발하면, 그들은 무대 위에서 피아노 연주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종이는 정리하기 쉽고, 점수로 평가하여 합격과 탈락을 가르기 쉽다. 이론 시험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되고, 현장의 기계를 가져올 필요도 없다. 감독관 몇 명과, 책상 몇 줄이면 평가는 충분했다. 예전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양상이 단순하여, 이론을 잘하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문제를 잘 해결했다. 지금은 너무도 다양한 요소가 개입해 만들어 내는 리스크를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는 지적 능력보다는 손끝 미세한 감각으로 훈련을 통해서 익힌 기술이 훨씬 중요한 시대가 도래해 버렸다.
2500여 년 전에도 이미 옛 현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장자의 윤편을 읽어보면, 수레바퀴 장인인 윤편은 자신의 고민을 제환공에게 토로한다. “수레바퀴 축의 구멍을 너무 크게 깎아도, 너무 작게 깎아도 쓸모가 없습니다. 이러한 비결은 도저히 말로써 설명할 수 없습니다. 소인의 자식에게도 그 비결을 깨우쳐줄 수 없어서, 일흔이 넘도록 제가 직접 깎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기술을 말로써 표현할 수 있다면, 그 기술은 이미 인공지능에 의해서 학습되어, 피지컬 AI에 의해서 손쉽게 대체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술, 자신의 손끝의 감각으로 익혀야만 하는 기술이 진짜 중요한 것 아닐까?
투수들도 피칭 방법이 교본에 아무리 자세하고 친절히 쓰여 있을지라도, 자신의 손끝에서 제대로 익혀야만 실전에서 다양한 변화구나 변종 직구를 던질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교본이 출간되더라도, A급 투수는 교본의 내용을 자신의 손끝에 내재화시킨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다.
결국 A급 투수와 B급 투수의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얼마나 내재화시켰느냐의 깊이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정확하게 그립을 쥐고, 손끝에서 책을 잊어버릴 만큼 새기느냐에 좌우된다. 최고의 투수는 교본을 암기한 사람이 아니라, 교본을 자기의 몸 안에 묻어버린 사람이지 않을까?
이제는 AI가 정답을 정확하고 재빠르게 찾고 있다. 우리 인간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는 AI에 맡기고, 얼마나 정확하게 느끼는가를 증명할 때다. 요즘의 지식은 누구에게나 빌릴 수 있지만, 감각은 자신의 것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다시 손을 믿는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
사회의 기조에 급격한 변동이 발생하면, 그 적응 정도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극단적으로 갈리게 된다. 나는 요즘의 변혁을 들여다보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겹친다. 케이시 목사의 비참한 죽음을 목도한 톰의 끓어오르는 분노가 현실에서 재현될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 그러다 결국, ‘모비딕’의 에이해브 선장 배처럼, 모비딕과 충돌하여 깡그리 사라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