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자동차

창작 편집

30여 년 전에 절찬리에 방영된 영화 ‘데몰리션맨’에는 최신 콘셉트카인 SDV(Software Defined Vehicle)가 등장한다. 데몰리션맨 SDV는 음성 제어로 자율 주행을 진행하면서, 조명이나 좌석이 스마트하게 조절됐다. ‘데몰리션맨’이라는 영화는 먼저 도착한 시대였다. 그 장면 속에서 달리던 차들은 우리가 아직 만들지 못한 기술의 윤곽을 조용히 비췄다. 기술보다 문화 코드가 더 중요한 세계, SDV가 출현하기 오래전, 영화 장면 속 자동차는 이미 우리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1993년의 상상 속 자동차는 오늘 우리의 도로를 밝히는 기술의 예고편이었다. 데몰리션맨에서는 SDV를 지나치게 단단한 금속체로 그렸지만, 2025년의 SDV는 부드러운 소프트웨어의 강물처럼, 운전자의 손끝을 따라 유연하게 흐른다.


자동차에 우리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그만큼 자동차가 우리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는 우리의 삶, 공간, 시간,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깊은 생활 문법이다. 자동차는 원래 탈 것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생활의 중심축으로 변했다.


자동차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간 질서를 안겼다. 자동차가 생긴 후, 우리의 세계는 활동 영역이 바뀌었다. 그래서 자동차의 변화는 곧 시간 감각의 변화, 즉 삶의 구조가 바뀌는 이벤트다. 여기에 SDV의 출현으로 다시 한번 우리의 시간을 재조각하기 시작한다.


자동차는 우리의 활동 반경을 확장시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SDV를 통해서 자신의 공간을 무한히 확대하기를 원할까? 자동차가 우리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은 반경의 확장이었다면, SDV가 우리에게 주려는 두 번째 선물은 경계의 소멸이다.


말을 타고 이동하던 시절, 우리의 활동 반경은 10~20㎞가 한계였다. 그러나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우리의 삶은 자동차의 이동 거리만큼 확장되었다. 자동차는 우리를 고정된 장소에서 해방시켰고, 정주라는 삶의 형식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즉,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도구가 아니라, 공간적 재편성 수단인 것이다.


SDV는 우리에게 약속한다. 이동 중에도 일을 할 수 있고, 이동 중에서도 사유할 수 있으며, 이동 중에도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도착과 함께 새로운 공간을 보여준다. 자동차는 더 이상 집과 회사 사이의 간극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공간이 된다. 그 공간은 오피스이기도 하고, 서재이기도하며, 거실이기도 하고, 여행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공간을 확장하고 싶은 욕망은 생존 본능을 넘어 자유의 본능이다. 고정된 삶은 안정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경계의 감옥이기도 하다. SDV는 우리에게 외친다. “너의 삶은 장소에 묶여 있지 않다.”, “이동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다.”, “너의 공간은 길을 따라 확장된다.”


SDV는 우리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SDV는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나는 어디에 속한 존재인가?”, “나는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는가?”, “나는 어떤 공간을 갖는가?” 예전에는 출발과 도착 사이의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었다. 그러나 SDV는 그 시간을 업무의 공간, 사유의 공간, 휴식의 공간, 재정비의 공간으로 바꾼다. 이는 곧, 시간의 소유권이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손끝을 확장시켰다면, SDV는 우리 몸의 반경을 확장시킨다. 필요한 순간에 즉시 떠날 수 있고, 도착과 함께 다른 정체성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운전이라는 행위에서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SDV는 우리에게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나를 구현하게 해 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인별로 별도의 SDV를 소유하고 싶어 할까? SDV의 소유 욕구는 ‘내 차’를 넘어, ‘내 공간’, ‘내 리듬’, ‘내 정체성의 확장체’를 갖고 싶은 것이다. 나는 여기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겹쳐진다. 버지니아 울프는 외쳤다. “인간은 자신의 창조성과 정체성을 지탱할 공간을 필요로 한다.”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물리적 경제적 독립성의 상징이었다면, SDV가 말하는 ‘나만의 공간’은 이동성까지 품은 확장된 형태의 자기 공간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이 고정된 방이었다면, SDV의 방은 흐름 속에 존재하는 방이다. 우리는 SDV 안에서 이동 중에도 자기만의 리듬을 유지하며, 외부 세계와의 거리를 조절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구성해 내고, 타인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된 공간을 확보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원했던 방은 문을 닫아야 비로소 시작되는 공간이었다면, SDV는 문을 열고 달리는 순간, 자기만의 방이 완성된다. 우리의 정체성은 벽이 아니라, 리듬으로 지어지고, 그 리듬을 싣고 이동하는 공간이 현재의 자기만의 방이 된다.


그녀의 자기만의 방이 정체성과 창조성의 기반을 상징했던 것처럼, SDV는 현대인이 정체성과 리듬의 공간을 확보하는 새로운 형태의 ‘움직이는 자신만의 방’이 된다. 둘은 시대적 간극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공간을 통해 자아를 구성한다는 명제를 공유한다.




작가의 이전글윤달은 공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