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과학
우리의 전통 사회에서는 음력을 양력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음력은 하늘의 달력이었다. 달은 눈에 보였고, 보름과 그믐은 아이도 노인도 함께 올려다볼 수 있었다. 시간은 관측의 대상이었고, 공동의 경험이었다. 반면, 양력은 숫자만으로 오는 시간이다. 태양의 위치는 몸으로 느끼기 어렵고, 달력 없이는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양력은 기록이 시간이지, 체감의 시간이 아니었다.
또한, 음력은 조상과 이어진 시간이었다. 제사, 명절 등 중요한 의식은 음력에 묶여 있었다. 음력은 가문을 건너, 세대를 넘어, 같은 날로 돌아왔다. 음력의 시간은 사람이 아니라, 피와 기억이 지키는 시간이었다. 결국 양력은 국가와 제도의 시간이고, 음력은 사람과 자연의 시간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설과 추석만큼은 여전히 음력으로 맞이한다. 설은 해가 바뀌는 날이 아니라, 달이 다시 태어나는 날이다. 어둠이 가장 깊은 그믐을 지나 첫 초승이 숨처럼 걸려 나올 때, 사람들은 “한 살 더 먹는다”가 아니라, “다시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추석은 곡식의 완성이자, 달의 완성이다. 가장 둥근달 아래서 사람들은 수확을 나누고, 부재한 이들을 떠올렸다. 추석의 달은 비추는 동시에, 기억하게 하는 빛이었다. 그래서 추석은 감사의 명절이면서, 그리움의 명절이었다.
태양의 한 해는 365.24일이고, 달의 한 달은 29.53일이다. 달 열두 번 모으면, 해보다 약 11일이 모자란다. 이 모자람은 세 해쯤 지나면 한 달 가까이 쌓인다. 그래서 윤달은 보통 2~3년에 한 번 조용히 음력 사이로 들어온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9년 동안 윤달은 7번 들어간다.
윤달은 겨울의 끝이나 가을의 가장자리보다는 봄과 여름의 문턱에 더 자주 머문다. 윤달에서 달의 자리는 단순히 초승과 보름만으로 정해지지 않고, 태양이 지나가는 절기에 의해 붙잡혀 있다. 윤달을 정하는 원칙은 이렇다. 절기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달, 그 달이 윤달이 된다.
윤달은 봄과 여름 사이의 여백, 삶으로 말하면 바쁘기 직전에 주어진 숨에 가깝다. 땅은 가장 왕성하게 살아 있는데, 하늘은 그때를 골라, 조용히 말한다. “조금 더 머물러도 된다.” 윤달은 느낌으로 남는 달이다. 그래서 윤달은 지나간 뒤에야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시간의 여운이다.
우리에게 윤달은 묘를 이장하기에 가장 조심스럽고도 허락된 시간이었다. 윤달은 삶의 달력에도, 죽음의 질서에도,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달로 여겨졌다. 그래서 우리는 이 달을 탈이 적은 달, 탈이 나도 고요히 묻히는 달로 받아들였다.
묘를 옮긴다는 것은 조상의 잠을 깨우는 일이고, 그 울림이 산 자에게 되돌아올까 두려웠다. 하지만 윤달은 달랐다. 이 달은 하늘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여분의 시간, 말하자면 “없어도 되는 달”이었다. 이 믿음 속에서 이장은 윤달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윤달은 공달이라 불렸다. 공은 비어 있음이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 업이 얽히지 않는 자리였다. 그래서 윤달에 한 일은 “공으로 친다”라고 했다. 잘되면 다행이고, 탈이 나도 본래의 시간에 남지 않는다고 믿었다.
공달에는 이장을 허락했고, 집을 고치게 했으며, 묵은 일을 정리하게 했다. 공달은 면책의 달이자, 유예의 달이었다. 하늘은 “이 달만큼은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공달이 지나면 다시 시간이 빽빽해지지만, 그 여백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편안하게 숨을 쉬었다.
사도세자가 쌀이 가득 찬 뒤주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던 임오화변은 하필이면, 아니 어쩌면 필연처럼 윤 5월에 일어났다. 1762년 윤 5월 13일, 달력 속에서 한 번 더 허락된 달, 공달의 한가운데서 조선 왕조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 닫혔다.
윤달을 공달이라 부르며, 업도, 길흉도, 명분도 비켜서는 시간이라 여겼지만, 그 공달에 사도세자의 숨이 막혔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과 자신의 광기와 모든 이름을 잃어가며, 여덟 날을 견뎠다. 끝내, 기록에서 미끄러지는 시간인 윤달에 역사에서 밀려난 존재가 되었다.
윤달이라는 여백에 왕권의 실패와 부자의 파국을 몰래 밀어 넣은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달이라 불린 그 달은 조선의 시간 가운데, 가장 무거운 기억이 되었다. 비어 있어야 하는 달이 가장 꽉 찬 비극을 품었던 순간. 윤 5월은 그렇게 조용히 역사의 가장 깊은 뒤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