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2025년 한 해, 가장 인상적인 한 컷은 젠슨황이 이재용, 정의선과 함께 치맥 회동하는 사진이다. 이 이벤트는 유일하게 HBM(High Bandwidth Memory)을 제공할 수 있는 한국이 엔비디아 전략에서 핵심 축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반도체를 공부했던 나는 젠슨황, 이재용, 정의선이 연출하는 영상을 보면서, 어깨에 한껏 뽕이 들어갔다.
아파트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우리는 HBM을 개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 우리가 한반도 좁은 땅 위에 하늘을 향해 집을 올리며 살아온 세월은 단순한 주거 방식이 아니라 공간을 수직적으로 압축해 내는 감각을 훈련시켰다. 이러한 감각의 결정체가 바로 HBM이다. 실리콘이라는 새로운 땅 위에서 수평 확장이 막히자, 한국 반도체 엔지니어들은 본능적으로 메모리를 수직으로 쌓는 길을 찾았다. HBM의 메모리들은 층층이 쌓인 아파트였다. 수직적 구조를 사랑해 온 문화적 DNA가 반도체 공정 속에서 응축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엔지니어들도 메모리들을 수직적으로 쌓는 것은 착상할 수 있었다. HBM의 본질은 메모리의 수직 구조에 있지 않다. HBM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본질은 하이 밴드위스(Bandwidth)에 있다. 여기에서 하이 밴드위스는 데이터의 하이웨이다. 즉, 데이터가 지체 없이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다. 특히, 메모리들 사이로 데이터가 전송될 수 있는 수직 고속도로가 핵심이다. 이러한 수직 고속도로는 TSV(Through Silicon Via)라고 불린다. TSV의 단면을 들여다보면, 나는 고려청자의 상감(象嵌)이 겹친다. 상감에서 ‘상(象)’은 비어 있는 형상이고, ‘감(嵌)’은 깊게 끼워 넣은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상감은 원하는 문양 형상을 파내고, 그 빈 형상 속에 다른 물질을 끼워 넣는 기법인 것이다.
고려청자의 상감 기법은 어느 날 갑자기 외부에서 흘러온 기술이 아니다. 이미 동아시아 공예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스며들어 12세기 중엽에 비로소 ‘고려만의 방식’으로 개발된 기술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해졌다기보다는 근동 여러 지역의 도자기 기술이 씨앗이 되어 고려에서 꽃 피우게 된 것이다. 초기 상감으로 보이는 자취는 12세기 초엽에 나타난다. 이때는 문양이 얕고 단순하다. 고려 상감청자는 12세기 중엽에 본격적으로 완성된다. 이때는 흑색의 상감과 백색의 상감이 정교해지고, 연꽃이나 버들잎이 살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고려청자만의 세련미가 드러난다. 12세기 후반이 되면, 상감 기법이 절정에 이르며,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靑磁 象嵌雲鶴文 梅甁)‘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상감 기법과 TSV 공정은 어떻게 연결될까? 상감 기법은 먼저 원 점토를 파내고, 그 빈 곳에 흑토와 백토를 끼워 넣으며, 그 표면을 갈아내어 평탄화한다. TSV 공정도 먼저, 실리콘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통로를 식각하고, 그 통로에 구리를 채워 넣으며, 표면 위로 흘러넘치는 구리를 갈아내어 평탄화한다. 상감 기법은 원 점토라는 물질의 빈틈에 흑토와 백토라는 다른 색의 의미를 끼워 넣어 예술적 구조를 만들었다면, TSV는 실리콘이라는 토대에 수직 통로를 파내고, 구리를 삽입하여 데이터 고속도로를 구축했다.
12세기 고려의 도자기 장인은 원 점토에 작은 예술적 문양을 새겼고, 21세기 한국의 반도체 엔지니어는 실리콘에 데이터 고속도로를 새겼다. 두 기술 모두 빈자리를 파서 세계를 연결하는 인류 오래된 미래를 품었다. 결국 상감의 문양과 TSV의 수직 통로에는 천 년의 간극을 두고 동일한 리듬이 꿈틀거린다. 12세기 어느 가을, 도자기 장인은 원 점토 위에 가느다란 숨결처럼 홈을 그었다. 그 홈 속의 작은 어둠을 걷어내고, 그 빈자리마다 흑토와 백토를 눌러 넣었다. 그 문양은 불 속에서 깨어나 비췻빛 청자에 마음을 새긴다. 이렇게 상감은 흙에 새긴 문양이 아니라, 비움 속에 또 다른 빛을 끼워 넣는 방식이었다.
천 년의 시간을 건너 플라즈마는 실리콘을 파내 수직 통로를 만들었고, 그 통로에 흑토나 백토 대신 구리를 흘린다. 반도체 엔지니어는 넘친 구리를 갈아냈다. 이렇게 TSV는 고려청자의 비췻빛 대신 데이터 고속도로를 품는다. 천년의 터널 양 끝을 잇는 것은 결국 빈자리를 창조의 공간으로 변환하는 우리의 손끝이다. 상감은 흙의 내부에서 빛의 질감을 끌어내고, TSV는 실리콘의 내부에서 데이터의 연결성을 끌어낸다. 둘 다 원래 가지고 있던 성질을 넘어,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얼핏 보기에는 전혀 다르지만, 저 너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만든 예술이라는 의미에서 상감과 TSV는 닮아있다.
나는 상감과 TSV의 실체에 대해서 외치고 싶다.
“비워서 열고, 채워서 잇는다.”
상감은 흙 속에 고요한 자연의 문양을 만들었다면, TSV는 실리콘 속에 빛보다 빠른 데이터의 연결을 새겼다. 비움은 공간을 열고, 채움은 또 다른 세계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