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을 쳐다보고 있는 라파엘로

창작 편집

정찬수의 이탈리아 크루즈 기행문 ‘생애 한 번쯤은, 지중해 위를 걷다’를 읽는다. 이 기행문은 꼼꼼한 법조인의 시선으로 서부 지중해 연안 골목골목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풍광 사진 반, 담담한 글 반으로 채워져 있어, 술술 읽힌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크루즈 매뉴얼, 여행 일기 및 풍경화 전시회의 절묘한 샐러드를 맛보게 된다.

나는 이 기행문을 읽으며, 20여 년 전 떠난 이탈리아 여행을 소환한다. 일단 내가 들른 곳에 눈길이 간다. 그러다가 당시에 아쉽게 감상하지 못했던 명화, ‘아테네 학당’에 빨려든다. “붉은 옷을 입은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관념과 이상의 세계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의 얼굴은 라파엘로가 존경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시라도, 미켈란젤로의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 내 궁금증을 알고 있었는지, 작가는 바로 답한다. “화면 앞쪽에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헤라클레이토스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고립된 섬처럼 그려졌는데, 이는 실제 미켈란젤로의 고독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반영한 장치다. 라파엘로는 경쟁자였던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며 이 거대한 지성의 흐름 속에 그를 당당히 편입시켰다.”

작가의 설명을 읽고 나서, ‘아테네 학당’에서 중앙 앞쪽에 자리 잡은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그가 한층 더 고독해 보인다. 최근에 봤던 김우창의 다큐멘터리 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의 선생 대사가 겹친다.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자폐적인 삶을 살게 된다.” 언제나 자신만의 파라곤을 완성하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던 미켈란젤로는 ‘아테네 학당’에서 그려진 모습처럼 살짝 자폐적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라파엘로는 그림의 오른쪽 중간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작가도 라파엘로의 얼굴을 설명한다. “관람객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라파엘로 자신의 모습은 매우 전략적인 장치다. 그는 자신을 철학자가 아닌, 전문학자와 수학자들의 무리 속에 슬쩍 끼워 넣음으로써 ‘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기술자가 아니라, 수학과 과학을 이해하는 지식인’이라는 예술가의 지위 향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라파엘로는 플라톤에 다 빈치의 얼굴을, 헤라클레이토스에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은 오른쪽 중간에 그렸다.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는 플라톤 측에 그림으로써 그들은 사유하는 화가이고, 자신은 아리스토텔레스 측에 그려 경험을 중시하는 화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을까?

과연 라파엘로 자신은 왜 관람객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을까? ‘아테네 학당’의 중앙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쟁을 계속하고, 주변 학자들은 각자의 생각 속으로 몸을 기울인다. 모두가 자기들끼리의 대화에 몰두해 있다. 그때 한 사람만이 고개를 든다. 바로 라파엘로다. 그는 손짓도 없이 단지 문지기처럼 서 있다.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을 현시대의 초상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아닐까? 고대의 철학자들에게 자신의 시대 예술가의 얼굴을 그려 넣은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작가를 포함한 관람객을 자신의 그림 속에 끌어들이고 싶었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관람객은 더 이상 밖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아테네 학당 안에 들어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자신의 여정을 미켈란젤로의 고통과 대비시키는 대목이다. “나는 여행기를 당일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사정이 생기면 그 다음날 보완하고 또 보완하는 절차로 진행한다. 볼 때마다 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고, 다른 사진이 추가될 수도 있다. 한 번에 완성하기는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여행기를 작성하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에너지가 소비되는 작업이다.”

다른 일행들은 다 쉬고 있을 때, 작가만이 홀로 여행기를 완성할 열정으로 ‘고립된 섬처럼’ 여행기를 보완하고 또 보완하고 있을 장면을 상상해 본다. 이런 고난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작가는 풍광 사진 사이사이에 자신의 감정을 켜켜이 쌓으며, 감격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생애 한 번쯤은, 지중해 위를 걷다:정찬수/북베이크/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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