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꿈을 그린 예술가

창작 편집

아침 일찍 단톡방에서 알퐁스 무하의 작품 '빛과 꿈' 사진이 올라온다. 무하의 '빛과 꿈‘을 보는 순간, 홀라당 반해버린다. 예전에는 설 연휴에 고향 갈 생각에 괜히 바빴지만, 양친을 여의고 양평으로 모신 뒤로는 설 명절이 여유롭다. 전시관은 더 현대 미술관이다. 일단 5호선 역으로 향한다. 더 현대는 두 번째 방문이지만, 첫 번째 때는 어마어마한 인파에 놀래, 입구에서 바로 돌아섰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방문은 살짝 설렌다. 오픈런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문을 열자마자 입장하면, 한가롭게 감상할 수 있기를...

무하는 체코 예술가다. 나에게 체코는 '변신'을 쓴 카프카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쿤데라의 모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프라하 영상을 보면서,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도시로 프라하를 올려놓는다. 동유럽의 신비스러운 나라 체코의 예술가는 자신의 심미감을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리고 있다. 5호선은 충정로를 지나고 있다.

나는 쉬지만,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오늘도 열심히 일터로 향하고 있다.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면서, 바삐 움직이는 광경을 바라보니, 미안함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어느덧 공덕이다. 출근 풍광을 관조하는 동안에 머나먼 지하철 여정은 목적지를 향해 간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무하의 작품을 상상한다. 이제는 블루투스 자판을 접고, 오픈런할 채비를 마친다.

서둘러 여의나루역에서 내려 미술관을 향해 걸어간다. 생각보다 미술관은 멀지 않다. 허걱 10:20이다. 다행히 춥지 않아서, 대기 벤치에 앉아서 다시 블루투스 자판을 꺼낸다. 나처럼 오픈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래도 달리지는 말아야지 다짐을 해본다. 연인들도 눈에 띄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이야기하고 있는 그룹도 있다. 대부분은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들은 홀로 있는 나를 한심하게 보지는 않겠지?

더 현대의 문은 10:30 정각에 열린다. 나는 좌우가 가려진 경주마처럼 맹렬하게 6층으로 오른다. 내가 첫 관람객이다. 무하의 작품은 요술 공주 셀리를 그린 만화 포스터 같다. 계속 걸어가니, 무하의 예술 메시지가 눈에 띈다. “예술가는 빛을 보고 꿈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옆으로 눈을 돌리니, 무하의 메시지를 글대로 보여주는 작품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에 압도된다. 무하가 자신의 모국 성 비누스 대성당을 위해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다.

무하는 그림을 예쁘게 그리는 것을 넘어, 신의 은총인 빛을 통해 꿈과 희망을 시각화하고 있다. 무하에게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신의 예술 철학을 구현할 최적의 매체였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은 형형색색의 유리를 투과하면서, 숨죽이고 있던 그림의 알레고리를 깨우며,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무하는 어두운 성당 내부에 들어오는 신성한 빛을 통해, 체코 국민들이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민족의 영광스러운 희망을 찾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그는 9세기 슬라브 민족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고 슬라브 문자를 만든 두 성인,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를 기리고 있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인 20세기 초반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체코인들이 힘든 시기를 보냈었다. 그는 당시의 고통은 신성한 역사의 일부이며, 결국은 구원을 통해서 극복될 것이라는 꿈을 일깨우고 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 상단에 구름처럼 넓게 펴져 있는 거대한 푸른 형상은 구체적인 인간이라기보다는 민족의 영혼을 그린 게 아닐까? 하단의 인물들은 현실의 고통에 안쓰럽게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무하는 그들 머리 위에 파스텔 톤의 빛을 배치한다. 눈앞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천상의 구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무하는 성당이라는 가장 공적인 장소에 슬라브 민족의 수호성인을 찬란한 빛으로 그려 넣었다. 체코 국민들은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며 자신들이 지배받는 피정복민이 아니라, 고유한 문화유산을 가진 위대한 민족임을 확인받는다.

무하는 이미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예술가였지만, 화려한 파리의 삶을 뒤로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열정적으로 체코 국민들을 위해서 예술 작품을 꾸준히 창작했다. 무하는 자신의 예술 철학대로 빛으로 꿈을 그린 것이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흐린 날에는 차분한 위로를, 맑은 날에는 찬란한 환희를 선사했다. 나는 무하가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빛을 매개로 자신의 국민들에게 꿈을 제시하는 작품을 구현한 것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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