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응원봉

매들린 밀러의 소설 ‘키르케’에는 텔레마코스가 21살에 처음 만나 9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바라본 느낌을 키르케에게 이야기한다. “모두가 얘기하는 아버지를 저는 만난 적이 없기에 슬픕니다.”

텔레마코스는 1살에 고향을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해서, 어린 시절 내내 사람들로부터 ‘오디세우스는 어떤 영웅인가’라는 이야기만 들으며 자란다. 그는 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 했지만, 막상 21살에 직접 만난 오디세우스는 살아 있는 인간이었고, 거기서 이야기의 영웅과 현실의 인간 사이 간극을 체감한 것이다.

텔레마코스는 21살이 되어버렸고, 그 나이는 단순히 21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1살은 스스로 세계를 해석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며, 타인이 부여한 오디세우스의 영웅성을 넘어서 자신만의 시각으로 아버지를 평가하게 되는 시기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들들은 20살 즈음 군대에 입대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챌린지다. 군 복무는 한국 사회에서 비자발적이지만 강제된 성인 통과의례다. 군대는 아버지보다 더 강력한 계급 체계를 체험하게 한다. 그 안에서 아들들은 처음으로 권위와 억압, 규율과 도피 사이의 감정들을 온몸으로 속속들이 겪는다.

집을 떠나 타인들과 생활하면서,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을 독립된 개체로 자각한다. 그전에 아버지는 무조건적인 존재였지만, 이제는 ‘나도 버텼다’는 감각이 생기며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필연적으로, 아들들은 군대라는 억압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꼼수를 터득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시간 끌기, 형식만 맞추고 본질은 피해 가기, 상관의 성향을 분석해 행동 조절하기, 명령을 그대로 따르되, 의도를 비껴 나가는 행동 등 수많은 비공식적인 생존 기술이 횡행한다.

이 과정에서 아들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게 능사가 아니구나’, ‘규칙도 결국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거구나’ 등 권위의 상대화에 눈 뜬다. 물론 이러한 것은 쫄다구일 때 주로 터득하게 되고, 고참이 되고 나면, 이러한 것들을 구별해 내는 요령도 터득하게 된다. 아쉽게도 나는 6개월(?) 내내 쫄다구로만 지내다가 제대해 버려서, 후자는 터득하지 못했다.


한편,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와 같이 지내는 9년 동안, 그의 모든 허상과 현실을 매일 마주 보면서, 점점 아버지의 이름에서 벗어난 오디세우스라는 개인을 바라본다. 즉, 오디세우스는 신화의 거리에 있을 때만 위대해 보일 뿐, 가까이에서 마주친 오디세우스는 자기 자랑에 도취되어 있고, 전쟁과 폭력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로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텔레마코스는 21살에 오디세우스를 만났고, 이후 9년간 그와 함께 살면서 오디세우스를 신화가 아닌 인간으로 직시하게 된다. 이 경험은 그에게 존재적 각성과 윤리적 독립을 가능하게 했다.

놀라운 점은 텔레마코스는 30살에 불과하지만, 아버지인 오디세우스를 한 인간으로서 입체적으로 바라다보는 것이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가장 본질적인 욕망과 결핍을 꿰뚫어 보면서, 자기 자신과 다름을 명확하게 인식한다. 그 인식을 바탕으로, 결국 오디세우스와는 다른 삶인, 자기 길을 따르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아버지는 나를 36살에 낳았고, 내 위로는 4명의 누나가 있었지만, 나는 4명의 누나 중 어느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아내는 나와 결혼할 때, 손 위 시누이가 4명이라는 점을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나는 아내를 위로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는 어떤 누나와도 친하지 않으니까.” 그때 아내는 반신반의했다. 결혼하고 2년이 흘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근데, 자기는 왜 그렇게 누나들이랑 데면데면해?”


나는 아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8살에 낳았다. 초딩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내가 아들을 낳았다고 말씀드리자, 바로 서울 집으로 올라왔고, 감정 표현이 서툴렀지만, 평생 지켜본 중에서 가장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당신의 평생소원이었던 손자의 이름을 6개나 작명했다. 아들의 이름은 고풍스러우면서, 묵직하다. 한자로 아들의 이름을 적으면, 주변의 어르신들은 바로 아버지가 작명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고딩 2학년 이후로 아버지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살았다. 서울로 대학을 와서 혼자 살게 되니, 더욱더 아버지와 데면데면하며 지냈다. 내가 군대를 제대한 21살 이후에는, 같은 직업의 친구들 아버지보다 승진이 늦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무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점점 더 마주치는 시간을 줄였다.

아버지랑 대화할 수 있는 동안에, 나는 아버지라는 역할을 제외하고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는 당연히 감정을 드러내는 개인이 아니라, 집안을 유지하고 통제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버지가 무슨 영화를 좋아했는지, 친구는 누구였는지, 어머니와 어떻게 사랑했는지 몰랐다. 아버지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정작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랑 가장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며 살았을 아버지를 두려움, 욕망, 실패, 외로움, 소망을 가진 고유한 존재로 바라보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한 후에야, 어렴풋이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들을 바라보며, 문득 ‘아버지도 외로웠겠구나, 두려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작 아버지가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시점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한 인간으로 복원되다니!

아버지처럼 데면데면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 아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18살이 된 아들은 그 나이에 내가 그랬듯이, 나를 피하려 한다. 아들을 들여다보면, 자꾸 내가 저질렀던 실수만 도드라져 보인다. 아들을 지켜보며, 내 아들은 나를 통해 세상에 나왔지만, 나는 아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내 고통을 반복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슬픔과 두려움이 밀려든다.

신해철의 시 ‘아버지와 나’처럼, 아직도 수줍은 나는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길어진 그림자 뒤로 할 말을 묻어두지 않고, 아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세월 속으로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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