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의 현타

응원봉

2022년 어린이날, 우리 가족과 처형 가족이 함께 사격장으로 놀러 갔다. 내가 먼저 권총 사격을 했다. 사격 조교는 권총 사격 요령을 설명한 후에, 왼쪽 눈만을 감고 사격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오른쪽 눈만으로 윙크가 가능하다. 즉, 한쪽 눈을 감는 경우에, 오른쪽 눈은 감을 수 있지만, 왼쪽 눈을 감을 수 없다. 그래서 사격 조교에게 왼쪽 눈만을 감지 못한다고 말하고, 오른쪽 눈만 감은 채로 표적지를 향해서 권총을 열심히 쏘았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탄두가 표적지 오른쪽으로 쏠려서 통과했다.


얼마 후에, 아들이 권총 사격을 마치고 나에게로 와서, 사격 조교가 나를 가리키며 아버지인지 물어봤다고 말했다. 아들도 오른쪽 눈만으로 윙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들의 표적지에도 탄두가 오른쪽으로 쏠려 있었다. 나는 아내의 표적지를 봤다. 아내는 자랑스럽게 표적지를 내밀었다. 전반적으로 탄두가 표적지 중앙에 집중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양궁으로 치면 불즈아이라고 불리는 정중앙을 맞힌 것도 보였다.


아내는 나에게 물었다. “군대까지 갔다 오신 분의 표적지가 왜 이럴까요?” 나는 바로 왼쪽 눈 윙크가 안 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아들에게 물었다. “너도 왼쪽 눈 윙크가 안 되니?” 아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처형과 동서에게도 양쪽 눈 윙크를 확인했다. 두 분 다 양쪽 눈으로 윙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형의 쌍둥이 아들도 확인해 보니, 쌍둥이 아들도 양쪽 눈 윙크가 가능했다.

결국 나랑 아들만 오른쪽 눈만으로 윙크할 수 있다. 유전의 무서움을 현타 하는 순간이었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도 나나 아들처럼 오른쪽 눈만 윙크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초딩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같은 직업의 친구들 아버지보다 승진이 늦었다. 지금 회고해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는 문제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무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고딩 2학년 이후로 아버지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살았다. 서울로 대학을 와서 혼자 살게 되니 더욱더 아버지와 데면데면하며 지냈다. 지금쯤이라면, 불쑥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오른쪽 눈만으로 윙크가 가능한지 물어보고, 그렇다고 말씀하시면, 나와 당신의 손자도 그렇다고 넉살을 떨 수 있을 텐데.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아버지와 대화할 수 없어진 후에야, 대화거리를 찾았다니.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나 자신조차도 오른쪽 눈만으로 윙크가 가능한지 몰랐다. 20대의 닭살스런 애정 행각을 실행하면서, 나는 오른쪽 눈만으로 윙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에게 나는 왼쪽 눈으로는 윙크를 하지 못한다고 고백하자, 아내는 삐꾸같다고 놀렸다. 그 이후로는 오른쪽 눈만의 윙크를 신체적 결함으로 인식하며, 가급적 숨기려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2022년 어린이날 에피소드를 계기로, 오른쪽 눈만의 윙크가 유전자의 전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쓴 도킨스에게 물어보고 싶다. 진짜로 오른쪽 눈만의 윙크가 유전자의 전략일 수 있는지를.


이기적인 유전자에서는 유전자의 번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유전자의 전략이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서, 오른쪽 눈만의 윙크가 내 유전자의 번식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유전자의 번식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30여 년 동안, 숨기고 싶은 신체적 치부가 아들을 통해서 유전적 전략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오른쪽만의 윙크가 유전자 번식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직역하면, 풀을 바르는 것(糊塗)은 얻기 어렵다(難得)는 것으로, ‘호도’는 우리가 흔히 뭔가를 ‘호도하지 마라’고 사용하며,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명확하게 결말을 내지 않고 일시적으로 감추거나 흐지부지 덮어 버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결국 난득호도의 속뜻은 ‘어리숙하게 행동하는 게 어렵다’ 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학벌 경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해져서, 영어 유치원부터 사교육 전쟁이 시작되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시험 경쟁은 ‘To be continued’다. 따라서 이렇게 똑똑함을 입증해야만 하는 사회 문화적 정서 속에서는 난득호도를 체득하여 일관되게 어리숙한 행동을 유지하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려 초 958년부터 시험으로 관료를 뽑는 과거제를 시행해 왔다. 우리 자제들이 이러한 시험에 합격해서 자신의 똑똑함을 돋보이기 위해 노력한 지가 벌써 1000년을 훌쩍 넘겼다.

지금 대부분의 우리의 자제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 입시에 합격하고, 이후에는 고시에 합격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렵게 고시에 합격한 우리의 자제들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는 자리로 승승장구하며 올라가서는 너무도 허무하게 세상 풍파에 휘말려 희생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장자는 ‘인간세’에서 “송나라 형지 땅에는 노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잘 자란다. 나무의 굵기가 한 뼘쯤 자라면 원숭이를 부리는 이가 말뚝으로 쓰기 위해 베어 간다. 서너 뼘쯤 되면 집의 들보를 찾는 이가 베어 간다. 일곱여덟 뼘쯤 되면 높은 사람이나 부자들이 관으로 쓰기 위해 베어 간다.”라고 이야기면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는 좋은 재목부터 소비되어 사라지는 위험성을 설파했다.

나는 똑똑함 돋보이기 경쟁에 매몰되어 있는 작금에, 오른쪽만의 윙크가 엉뚱하게도 똑똑함을 뒤로 미루어 좋은 재목부터 사라지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난득호도의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만의 과대망상인가? 꿈보다 해몽인가?


다시 한번 장자의 지혜를 빌린다. 장자는 ‘변무’에서 “물오리는 비록 다리가 짧지만 길게 이어주면 오히려 괴로워할 것이다. 학의 다리 또한 길다고 그것을 자르면 슬퍼할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본질을 추구하라는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사르트르가 외쳤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도 겹친다.

나는 장자의 ‘물오리 학 이야기’와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외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나는 우리 선조들이 자신에게 들이닥친 하찮거나 언짢은 사건을 가급적이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하셨던 ‘꿈보다 해몽’ 속담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오랫동안 오른쪽만의 윙크가 나만의 신체적 치부로 여겼다가, 아들에게서도 오른쪽만의 윙크를 발견하고 나니, 유전에 의해서 우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고 아들에게 전달되는 형질이라 생각되어, 살짝 위로가 된다. 한발 더 나아가 나의 오른쪽만의 윙크는 좋은 재목부터 사라지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난득호득의 한 가지 방편으로 여긴다.

나의 과대망상 해몽은 과연 내 손자도 오른쪽 눈으로만 윙크가 가능할지 엄청난 궁금증을 폭발시킨다. 더 궁금한 점은 손녀도 오른쪽 눈으로만 윙크가 가능할지이다. 제발 아들이 손자도 낳고, 손녀도 낳길 기원한다. 아니면 한방에 이란성쌍둥이를 낳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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