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면, 첫 번째 인상적인 장면을, 와신상담의 주인공 구천을 평가하는 대목에서 만난다. 범려는 오나라가 멸망한 뒤, 승리의 연회가 아직 식지 않았을 때, 이미 엔딩을 보았다. 그래서 문종에게 속삭인다. “우리 대왕 구천은 함께 어려움을 겪을 수(可與共患難)는 있으나,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不可與共樂)는 없다.”
범려의 눈에 비친 구천은 고통을 겪어야만 할 때는 사람을 붙잡지만, 성공을 손에 쥔 뒤에는 그 고통의 증인을 견디지 못하는 군주였다. 환난의 기억은 늘 권력자에게 불편한 그림자였다. 범려는 그래서 떠났고, 이름을 바꾸며, 역사에서 한발 물러난다.
문종은 남았다. 충성을 의리라고 믿었다. 문종은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범려에게 보였던 불행한 운명을 맞이했다. 권력은 함께 비를 맞아 줄 사람은 찾지만, 함께 햇볕을 나눌 사람은 원하지 않았다. 구천에 대한 평가는 역사를 관통하는 권력의 성격에 대한 경구로, 내 뇌리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사마천은 자기를 벌한 한무제를 구천으로 평가한 것은 아닐까? 사마천에게 한무제는 위대한 제국을 완성한 황제였고, 동시에 자신을 궁형으로 내몬 존재였다. 그는 한무제를 직접 구천이라고 평가하지 않았지만, 구천을 통해 한무제가 어떤 인간인지를 나에게 보여줬다.
어쩌면 궁형 이후의 사마천은 문종보다 범려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권력의 곁에 남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진실을 남겼으니. 그런 면에서 보면, ‘사기’는 복수의 글이 아니라, 견딘 자만이 쓸 수 있는 가장 조용한 판단문이다.
이 일화를 계속 읽다 보면, 사마천은 자신을 문종에게 투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마천은 범려를 존중했고, 그의 퇴장을 찬양했다. 그러나 사마천은 범려처럼 강호를 떠날 수는 없었다. 사마천은 아버지에게 이어받은 ‘사기’라는 미완의 약속을 지키려 했다.
문종은 군주가 변할 수 있음을 알았지만, 그 변화가 자신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마천 역시 한무제가 자신을 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되, 그 벌이 인간의 존엄을 지우는 방식일 것이라고는 끝까지 믿지 않았다.
반면에, 범려는 사마천 자신의 로망이었다. 범려에게는 사마천이 끝내 가질 수 없었던 덕목이 있었다. 떠날 수 있는 자유,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거리, 공이 완성된 뒤, 주저하지 않고 권력에서 한발 물러나는 과감함, 권력의 비장함을 읽어내는 냉철함.
사마천은 범려를 젊은 날의 선택지로는 그리지 않았다. 그는 이미 모든 대가를 치른 뒤에, 되돌릴 수 없는 몸으로 범려를 다시 불러낸다. 그러니 범려는 미래의 모델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도착한 가능성이다. ‘늦은 후회’의 가사가 겹친다. “사랑은 떠난 후에야 아는지”
궁형을 겪고 난 뒤, 사마천에게 ‘떠난다’는 말은 더 이상 행동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분기점이었다. 그래서 범려는 사기 속에서 전략가도, 상인도, 영웅도 아닌, 정확한 타이밍을 아는 인간으로 남는다. 사마천은 그의 계책보다, 그의 퇴장을 오래 비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알았고, 그래서 떠났다.” 이것은 찬사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뒤늦은 인정이다.
사마천은 자신이 왜 떠나지 못했는지를 범려를 통해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떠났다면 어땠을지를 역사 속에 한 번 배치해 본다. 이것이 사마천의 방식이었다. 회한을 자서전으로 쓰지 않고, 타인의 삶에 접어 넣는 멋지고도 기발한 방식.
그런 면에서 보면, 범려는 사마천의 이상형이기보다, 그가 이미 건너지 못했음을 아는 강의 반대편 풍광이다. 이 풍광은 멀리서 보면 고요하고, 가까이 갈수록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 또렷해진다. 문종은 사마천이 살아낸 삶이고, 범려는 사마천이 고초 이후에야, 이해하게 된 삶이다.
그러니 범려는 사마천이 되고 싶었던 인물이면서 동시에, “사마천이 나는 저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끝내 써 내려간 인물이다. 사기는 그래서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선택의 대가를 모두 지불한 뒤에야 비로소 정확해지는 인간 이해의 책이다. 범려는 사마천의 꿈이 아니라, 뒤늦은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