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가두는 가면

창작 편집

극도의 혼돈이 계속되던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저녁, 조지 오웰의 인사이트를 빌리기 위해,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를 꺼내 읽는다. 임어당의 문장을 인용하여, 조지 오웰을 표현하자면, “마음의 벗으로서 영원히 맺고 싶은 옛 친구”다.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옛 현인을 극찬하고 있다. “자기가 한 것과 똑같은 말을 했고, 자기가 느낀 것과 똑같은 느낌을 가졌었다는 것, 그리고 아마도 자기보다 우아하고 보다 쉬운 말로 표현했다는 사실을 자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이때 그는 옛 친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요, 옛 친구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 주게 되어 양자는 마음의 벗으로서 영원히 맺어지게 된다.”


나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중에서 ‘코끼리를 쏘다’를 제일 좋아한다. 여기에는 도처에서 해학적인 문장을 만나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조지 오웰은 자신의 구린 모습까지도 유머로 승화시키는 신공을 발휘한다. ‘코끼리를 쏘다’는 그가 19세부터 24세(1922~1927)까지 버마 말단 순사로 근무하면서 맛본 제국주의의 본질을 자신만의 문체로 멋들어지게 이야기한다.


첫 문단부터 월척이 등장한다.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미움을 받을 만큼 내가 중요해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조지 오웰은 이튼 스쿨을 졸업했지만, 대학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별도로 버마 순사 시험에 응시하여, 말단 순사가 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하나고를 졸업하고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관리 직원이 된 것과 비슷하다.


어느 날 아침 일찍 그에게, 발정 난 코끼리 한 마리가 사고 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그는 총을 들고 출동하지만, 멀리서 코끼리를 살펴보며, 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돌아서서 가려는 순간, 그를 따라온 2000여 명의 군중에 놀라며, 갈등이 시작된다.


“여기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 군중 앞에 총을 들고 서 있는 백인인 나는 겉보기엔 작품의 주연이었지만, 실은 뒤에 있는 노란 얼굴들의 의지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바보 같은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백인이 폭군이 되면 폭력을 휘두르고 말고는 자기 마음이지만, 백인 나리라는 상투적 이미지에 들어맞는 가식적인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는 것을 말이다.”


백인이 폭군이 되는 건 선택일지 모르지만, ‘백인 나리’라는 가면을 쓰는 순간, 백인의 폭군 선택은 이미 정해진 운명의 수레바퀴대로 진행된다는 것을 조지 오웰은 돌아서는 찰나에 깨달아 버렸다. 그는 무기력한 허영의 갑옷을 입고, 타인의 시선에 둘러싸여, 그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연기해야만 했다. 이것은 그가 단지 백인 나리라는 이미지에 길들여졌기 때문일까?


이어서 그는 자신의 무기력함과 비굴함을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언제나 원주민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안달하고, 그래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원주민이 예상하는 바대로 행동해야만 하는 게 그의 지배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면을 쓰고, 그의 얼굴은 가면에 맞춰져 간다.”


처음에는 가면이 얼굴을 가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면 아래의 얼굴은 점점 가면을 닮아간다. 그래서 가면을 벗으면 얼굴과 가면이 닮았다는 것을, 들키게 될 것이 두려워서, 더 단단히 끈을 조이는 걸까? 그럴수록 그는 지배자가 아니라 지배 역할에 사로잡힌 포로가 된다.


지배자는 힘을 행사하는 자이기보다는 힘을 행사해야만 하는 자이고, 그 역할에서 벗어나면, 그 자신이 무너질까 두렵다는 것을 조지 오웰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지배는 타인을 굴복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를 가면 뒤에 가두는 연극이다.


그렇다고, 조지 오웰은 코끼리를 내버려 두고, 뒤돌아서서 가지는 못한다. 그는 뒤따라오는 수많은 군중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가면을 쓰고 코끼리를 조준해 사격한다. 코끼리는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지만, 그는 코끼리의 마지막은 외면한다.


그의 글은 “나는 내가 코끼리를 쏜 게 순전히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한 짓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라고 자백하며 마무리된다. 그가 코끼리를 쏜 이유는 쪽팔리기 싫었기 때문인 것이었다.


생활의 발견: 린위탕 지음/안동민 옮김/문예출판사/2012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지음/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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