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빙점

낭만 과학

바닷물을 얼릴듯한 빙점 추위가 아파트 현관문 사이로 내 오금에 다소곳이 가라앉는다. 2026년 첫나들이의 기대감에 나를 데려가줄 차가 도착하기 1시간 전에 집을 나선다. 일단 가장 먼저 문을 여는 카페로 향한다. 어두운 거리에는 어젯밤 연속되는 강추위 경고 문자 덕분에 적막과 한파로 가득하다. 나는 커피와 머시룸 수프를 주문한다. 자리를 잡고,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자판을 꺼낸다.

진동벨이 울리자, 허둥지둥 트레이를 가져온다. 일단 수프 한 모금을 들이킨다. 엄청 뜨겁다. 대학 시절 유행했던 '덩달이 유머'가 떠오른다. 덩달이가 아버지와 목욕탕으로 간다. 아버지는 바로 탕 안으로 들어가서, "시원하다!"를 연신 외친다. 덩달이가 아버지에게 묻는다. "진짜 시원해요?" 아버지가 답한다. "그럼." 덩달이도 과감하게 탕 안으로 들어가지만, 바로 뛰어나온다. 옆에 있던 동네 형에게 투덜댄다. "이 세상에서 믿을 XX 한 명도 없네!"

그래도 뜨끈한 수프 국물이 들어가니, 빙점 추위가 풀린다. 나는 동해와 남해 바닷물이 어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유일하게 낙조를 보러 갔던 서해 앞바다에서만, 파도의 뾰족한 이빨까지도 고정되어 있던 풍광을 봤었다. 우키요에 파도는 폼페이 최후의 날처럼 갑자기 멈춘듯했다. 바람은 그날이 훨씬 더 셌지만, 온도는 오늘처럼 영하 7도와 10도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나를 픽업하기로 한 친구에게서 10분 늦는다는 문자가 온다. 창밖으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지만, 동장군의 기세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다. 오늘의 빙점 추위 속에서도 우리는 "햇볕에 바래며,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살짝 걱정된다. 그래도 오늘만의 역사가 은근히 기대된다. 이제 첫 목적지 회암사로 데려다줄 차를 맞이하러 나갈 시간이다.

우리는 서둘러 회암사로 출발한다. 회암사 정문에 도착하니 다른 친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획자 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회암사 뒷산인 천보산에 오른다. 오늘은 하늘이 유난히 파래 보인다. 칠보산 오르막에는 쓸쓸한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바닷물 빙점 추위 덕분에, 오붓한 산행을 즐긴다.

400미터 남짓한 산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확 트여 있다. 옆에 있는 친구가 말한다. “이 정도 하늘이면, 북한도 보이지 않을까?” 북쪽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군부대가 눈에 뜨인다. 심적 거리보다 더 먼 북한을 실감한다.

내려오는 길목에 바위 하나가 산등성이에 서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우리 할아버지 등처럼 굽어 있다. 표면에는 바람과 햇볕이 어루만진 미세한 주름이 층층이 쌓여 있다. 두 갈래로 갈라진 꼭대기는 하늘의 정기를 호흡하려는 짐승이 자신의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 그 앞에는 커다란 암반이 완만하게 누워있다. 나는 할아버지 등 바위에 다가서 보지만, 커다란 암반이 경사지기 시작한 곳에서 바로 멈춘다. 이곳이 나의 경계다.

그렇지만 바로 내려가기가 아쉽다. 경계에 서서 양주 풍광을 바라본다. 우리나라 산 어디에나 보이는 전선은 인간의 흔적을 얇게 그리고 있다. 그 너머 마을에서는 무언가 열심히 사는 듯한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이 등 바위는 마을이나 인간의 흔적에는 무심하며, 동장군의 바람 소리만을 묵묵히 듣고 있다.

짧은 명상은 동장군의 쉼 없는 파동으로 막을 내린다. 우리에게는 회암사지가 기다리고 있다. 회암사지 전체를 관조할 수 있는 포인트에서 멈춘다. 햇볕이 먼저 말을 걸지만, 곧이어 빙점 바람의 매서움이 온몸을 덮친다. 분명히 햇살이 할아버지 등 바위보다 더 강해졌는데, 빙점 바람은 왜 이렇게도 심술을 부리는 걸까?

모자를 눌러쓰며, 시간이 잠시 멈춘 자리를 묵묵히 본다. 땅 위에 누운 돌들은 고요한 침묵을 이어 붙인다. 뒤쪽의 산들은 겹겹이 포개진 푸른 등줄기로 인간의 손길이 떠난 자리를 품어 주고 있다. 지금의 여백이 오히려 옛 회암사의 웅장함을 열변하고 있다.

오늘의 날씨는 참으로 오묘하다. 아침에 출발할 때는 엄청난 빙점 추위를 예고했다. 막상 회암사에 도착하여, 뒷산인 천보산을 오를 때는 잦아든 빙점 추위로 맑디맑은 명상을 수행했다. 회암사지로 내려오니, 햇살의 강도를 압도하며, 본격적인 빙점 추위를 선보인다. 과연 나는 2026년에 한 번 더 빙점 추위를 맛볼 수 있을까? 오늘의 다이내믹한 빙점 추위는 내 추억의 페이지를 입체적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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