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2월에는 김민형의 ‘세상은 아름다운 난제로 가득하다’를 읽는다. 이 책은 김민형 교수가 5년 동안 한겨레 신문에 게재한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나는 김민형 교수가 EBS에서 수학 난제에 대해서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눈빛으로 강의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는 여전히 수학에 대한 열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고딩 1학년 때 이과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수학 문제를 잘 풀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이과를 선택하는 것이, 영어를 잘하는 학생은 문과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 나도 너무 단순한 이 수레바퀴에 빠져 버렸다. 내가 선택한 전자공학은 60% 정도의 물리 지식과 40% 정도의 수학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나마 겨우 대학 졸업장을 받게 된 공은 수학 지식 덕분이었다.
평소 수학에 관심이 있던 나는, 천재 수학자로 불리는 김민형이 수학적 인사이트로 세상의 난제를 얼마나 아름답게 해석해 낼 수 있을지 살짝 궁금하다. 일단 ‘집회, 안정적인 소요’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눈길이 머문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지냈던 김민형은 2024년 12월 3일의 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경계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번 계엄은 40년간 외국에 살면서 한국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계엄이 해제되기까지의 몇 시간을 제외하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까지 심각한 걱정을 거의 안 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달리 표현하면 국민이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한 번도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물질세계를 과학적으로 기술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회적 평형이 얼마나 안정적인 가는 매우 중요하다. 대립되는 시각을 보유한 사람들 사이에 내재한 신뢰와 스스로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참여 정신, 법적인 절차에 대한 평균적인 인식 수준이 그런 안정성의 기반이다.”
이번에는 그의 관조에 대해서 내가 답할 차례다. 나는 2024년까지, 1980년 5월, 1987년 6월, 2017년 탄핵 심판을 경험했다. 나는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용기를 지니지는 못했다. 겨우 2016년 10월에 딱 한 번 광화문에 나갔을 뿐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몸을 사리다가, 1945년 8월 16일이 돼서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꼴이다.
이런 와중에, “2024년 11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소년이 온다’를 읽는다. 아직도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들으면, 정수리를 한 대 얻어맞은 충격이 가해진다.
‘소년이 온다’를 다 읽고 나면, 저절로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동호의 죽음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각성을 하게 된다. 결코 중학교 3학년 나이의 소년이 국가의 이름으로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할 수밖에 없다. 한강의 문장은 그동안 외면했던 나의 부끄러움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계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내 마음속에서 이 상황을 감시하는 눈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이 에세이에는 2023년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22위로 평가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아마도 서구적 관점에서 추출한 파라미터를 바탕으로 평가했을 것이다. 이것은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적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2024년과 같은 사태에서는 들어맞지 않다.
나는 한강이 ‘소년이 온다’를 통해서 던진 화두에 주목한다. 그는 누군가는 짐승이 되고, 누군가는 인간으로 남을지가 각자의 선택임을 환기시킨다. 이 선택은 거대한 영웅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반복되는 블랙 코미디 같은 역사적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결단을 촉구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대부분은 다시는 동호가 죽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를 훨씬 뛰어넘는 민주적 평형을 이뤄내지 않았을까?
2024년 12월 18일에 작성된 이 에세이는 “지난 열흘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중요한 기간이었다.”라고 마무리한다. 그로부터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린 현재, 당시보다 세계적인 혼돈은 하루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오히려 김민형의 찬사를 지금 바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소년이 온다: 한강/창비/2014
세상은 아름다운 난제로 가득하다: 김민형/김영사/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