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1920년대, 자동차 차체를 두 가지 색으로 칠하던 미네소타 공장에서, 경계선을 막아주던 마스킹 테이프는 너무 쉽게 떨어졌다. 붙여도 붙은 척만 하다 이내 떨어지는, 믿을 수 없는 종이띠에 불과했다. 현장에서는 엄청난 불평이 쏟아졌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불평을 정확하게 토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평의 수요는 표현되지 못한 채, 아직 언어를 갖지 못한 욕망에 불과했다.
이때 3M의 젊은 연구원 드루는 “떼어낼 수 있으면서도, 붙어 있어야 한다”라는 뜨거운 얼음 같은 목표를 상상했다. 드루는 사람들의 표현되지 않은 불만을 조용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드루는 진짜 수요는 행동의 그림자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은 모호하지만, 동선은 명확했기 때문이다. 수요는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발자국을 통해서 드러났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접착제를 아주 얇게, 균일하게 바른 스카치테이프였다. 과하게 달라붙지 않고, 필요한 동안만 머물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물러나는 꿈같은 존재가 이 스카치테이프였다. 이러한 스카치테이프는 처음부터 자국을 남기지 않으려 태어난 건 아니지만, 결국은 자국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드루가 막 개발한 스카치테이프를 자동차 도장 공장에 가져갔을 때, 현장의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이 테이프를 들고 이렇게 소리쳤다. “이걸 만든 스카치 같은 상사에게 가서, 접착제를 듬뿍 쓰라고 해!” 아이러니하게도, 조롱의 대명사인 ‘스카치’가 이 테이프의 브랜드가 돼버렸다. ‘스카치테이프’
스카치테이프는 부착 면을 붙잡으려 들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만 머물고, 미션이 끝나면 조용히 물러난다. 힘으로 남지 않고, 끈적임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강한 접착은 흔히 찢고, 벗겨내며, 상처를 남기지만, 스카치테이프는 절제의 접착을 선보였다. 붙음과 떨어짐 사이, 그 가장 예민한 균형점에서 스스로를 멈춘다.
그래서 스카치테이프는 기술이라기보다 배려에 가깝다. 사람 사이에서도 드문 태도, 필요할 때 곁에 있고, 떠날 때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미덕이다. 넘치지 않는 법을 안다는 것은, 덜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미련 없이 떠날 줄 안다는 뜻 아닐까?
스카치테이프는 우리 일상 속에서 가장 얇은 두께로 가장 두터운 겸양을 베푸는 물건이다. 두터운 예의를 머금고 있는 테이프라는 말속에 스카치테이프의 성정이 담겨 있다. 겉으로는 한없이 얇고, 손끝에선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 상상할 수 없는 얇음 안에는, 무례하지 않으려는 의도와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가 층층이 쌓여 있다.
스카치테이프는 붙어 있을 때는 성실하고, 떼어낼 때는 조심스럽다. 자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존재했음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물은 물건을 붙이는 도구이기 전에 관계를 대하는 매너를 내재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 관계에서 존재했음을 강요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될까? 우리도 스카치테이프처럼 자기 흔적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말을 다 했다고 마음을 다 전한 것은 아니며, 함께 있었다고 소유권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관계는 늘 겹친 시간의 길이보다 남기지 않는 압박의 강도로 기억된다.
우선, 침묵을 불안으로 채우려 하지 않는 다짐이 중요하다. 답장이 늦다고 해서, 마음 씀이 줄었다고 단정하지 않으며, 거리가 생겼다고 해서 배신이라 이름 붙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 사이의 여백은 대개 둘 다에게 숨 쉴 여지를 남기는 공간이다.
침묵은 원래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 머물다 가는 자리다. 그런데 우리는 그 빈자리에 불안을 먼저 눕힌다. 답이 없으면 마음이 없는 것 같고, 조용하면 멀어지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관계가 성숙해질수록 말보다 침묵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 사람의 깊이가 드러난다.
침묵을 불안으로 채우지 않는다는 건, 상대를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더 깊게 자기 자신을 견딜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대의 침묵 속에서도 내 존재가 지워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관계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문고리를 흔들지도 않는다. 열리면 들어가고, 닫히면 그 앞에 자기 체온만 남겨 둔다.
나는 잡아당기지 않고, 벗겨내지 않고, 끝난 뒤에도 상대를 온전하게 두는 스카치테이프의 방식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의 가장 두드러지는 매력인 두터운 예의란, 힘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힘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태일 것이다. 표현되지 못한 수요가 승화된 스카치테이프는 오늘도 가장 얇은 것이 가장 깊이 예의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없이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