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삼월 둘째 주 토요일에 예고 없이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내비게이션에 ‘신륵사’를 입력한다. ‘1:22’가 출력된다. 예상보다 짧은 시간이다. 즉시, 시동을 건다. 중부 고속도로를 질주하다가, 제 2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한다. 다들 나랑 같은 데로 가는 걸까? 다행히, 대다수는 원주 방향으로 향한다. 신륵사 관광단지의 주차장은 3/4 정도 차 있다. 관광객은 여강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에 집중적으로 모여있다. ‘여강’은 여주 앞을 지나는 남한강의 별칭이다. 여주는 여강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문화 코드를 열정적으로 보전하고 있다.
원래는 신륵사를 산책할 생각이었지만, 핫플처럼 보이는 출렁다리에 오른다. 나선형 통로를 지나 확 트인 다리 위에 도달하니, 봄볕은 따사롭지만, 바람은 불현듯 내 볼에 서늘함을 안긴다. 이 서늘함이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을 소환한다. 춘래불사춘의 주인공은 왕소군이다. 왕소군은 기원전 50여 년에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당시 원제는 3,000 궁녀를 거느리고 있었다. 원제는 ‘모연수’라는 화공에게 3,000 궁녀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고, 그 초상화를 보고 궁녀를 선택했다. 그래서 대다수의 궁녀는 자신을 예쁘게 뽀샵해 주기를 바라며, 모연수에게 뇌물을 제공한다.
미모에 자신이 있었던 왕소군은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모연수는 왕소군을 실제보다 훨씬 못생기게 그린다. 문제는 흉노 왕과 화친을 원하며, 원제는 자신의 승은을 입지 않은 궁녀를 선택하게 했다. 당연히 흉노 왕은 왕소군을 간택했고, 원제는 처음 본 왕소군의 모습을 보며, 모연수의 목을 벤다. 동방규는 이 상황을 상상하며 800여 년 후에 ‘昭君怨(소군원)’이라는 한시를 짓는다.
昭君怨(소군원)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왕소군의 한탄
엄청나게 추운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있을까?
봄이 왔건만 왕소군의 마음은 봄 같지 않네
요대가 자연스럽게 느슨해지는 건
잘록한 허리를 위해서가 아니라서 안타깝구나
동방규의 춘래불사춘을 온몸으로 느끼며, 여강의 출렁다리를 걷는다. 저 멀리 영월루가 보인다. 우리의 조상들은 강변 언덕 위에 누각을 지어놓고 달을 맞이했나 보다. 다리 중간쯤에서 여강을 바라보니, 물새가 작은 물결을 일으키며 유유자적 날고 있다. 다리를 다 건너지 않은 채로 고개를 돌리니, 서글프게 파란 강물 위로 신륵사를 지나는 황포 돛단배가 유난히 쓸쓸해 보인다. 나는 이 정취에 취해 春日來不似春風(춘일래불사춘풍)을 노래한다.
春日來不似春風(춘일래불사춘풍)
驪江橋上望迎月(여강교상망영월)
古瓦蒼松歲寒中(고와창송세한중)
神勒寺前江水碧(신륵사전강수벽)
黃帆孤棹自悠通(황범고도자유통)
水鳥浮驪江舊夢(수조부여강구몽)
巖花欲綻恨未紅(암화욕탄한미홍)
陽光溫暖如春意(양광온난여춘의)
春日來不似春風(춘일래불사춘풍)
봄햇살은 왔건만 봄바람 같지 않네
여강 다리 위에서 영월루를 바라본다
옛 기와와 푸른 소나무 사이로 차가운 세월이 지나네
신륵사 앞 강물은 아직도 서글프게 파랗고
외로운 황포 돛단배는 홀로 유유히 스쳐간다
물새는 여강 위를 날으며 여전히 겨울 꿈을 꾸고
바위 꽃은 봉오리를 터트리려 하지만 붉음이 오지 못함을 한탄하네
따스한 볕은 영락없는 봄기분을 전하니
봄햇살은 왔건만 봄바람 같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