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만의 맑고 의미 있는 일반청의미

민낯

소쇄원은 속박 없이 맑고 깨끗하며 자유로운 정원이란 뜻으로, 양산보가 기묘사화(1519년)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귀향하는 27세(1530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정원이다.

조선시대에는 본명은 주로 군, 사, 부가 불렀고, 자는 관례 후에 본명을 대신해서 불렀던 것이며, 호는 친구들 사이에서 허물없이 쓰기 위해서 지은 이다. 호를 제외한 것은 남이 지어 주는 반면에, 호만이 자신이 지은 것이어서 자신의 정체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결국, 양산보는 소쇄원처럼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맑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 자신의 호를 소쇄라고 짓지 않았을까?


소쇄원에는 오곡문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 물이 폭포가 되어 연못으로 떨어지며, 계곡 가까이에는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집인 제월당과 ‘비 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인 광풍각이 들어서 있다.

양산보는 1503년에 태어나서 14세(1517년)에 상경하여 조광조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16세(1519년)에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연루되어 능주로 유배되고, 사약을 받고 죽는다. 이후 17세(1520년)에 담양으로 낙향해서 27세(1530년)에 소쇄원을 조성했으며, 54세(1557년)에 사망한다.


소쇄원에는 양산보의 의지를 표현한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라는 글귀가 산비탈 담장에 걸려 있다. ‘소쇄라는 처사인 양공의 오두막’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처사라 함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을 양성하는 선비’를 뜻하며, 조선시대 선비들이 가장 불리고 싶어 했던 호칭이다. 양산보는 자신을 처사라고 생각해서 이러한 글귀를 남긴다.


조광조는 1482년에 태어나서 33세(1515년)에 출사 하여 거침없는 논리와 열정으로 많은 신료들과 중종을 탄복시킨다. 조광조는 단번에 중종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불과 4년 만인 1519년 가장 영향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가 된 것이다.

당시 중종은 ‘자고 났더니 유명해졌다’라는 바이런의 시구절처럼, 반정으로 하룻밤 사이에 왕이 된다. 그래서 중종은 3대 공신,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에게 휘둘려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한다. 3대 공신,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이 모두 사망한 후에, 바람처럼 나타난 조광조는 너무도 매력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조광조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이상주의적인 성리학자다. 이상주의자는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른다. 더구나 조광조가 출사 한 1515년에는 33세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보였던 조광조가 4년이 흐른 뒤에 중종에게는 불편한 존재가 된 것이다.

조광조는 중종에게 왕이라도 도덕적으로 감시하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중종에게 부담을 준다. 중종 입장에서는 내가 왕인데 신하 눈치나 봐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주초위왕은 핑계일 뿐이었으며, 결국에는 자신의 권력을 지지해주지 않는 조광조가 필요 없어진 중종은 훈구 대신들을 이용하여 조광조를 제거한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지인들이 조광조에게 자신을 배신한 사람은 다름 아닌 중종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지만, 조광조는 사약을 받는 순간까지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소쇄원을 산책하다 보면, 소강절이 쓴 오언절구 맑은 저녁을 음미하는 ‘청야음’이 떠오른다. 특히 3행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에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일반적이지만, 나에게만은 맑고 의미 있는 것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淸夜吟(청야음; 맑은 저녁을 음미함)

月到天心處(월도천심처; 달은 하늘 한가운데 떠오르고)

風來水面時(풍래수면시; 잔잔한 바람이 물 위로 불어올 때)

一般淸意味(일반청의미; 일반적이지만, 나에게는 맑고 의미 있는 것을)

料得少人知(요득소인지; 헤아려 깨닫는 이는 어디 있을까)


소강절은 북송 시대 시인이었으니, 양산보와는 500여 년의 시간적 간극과 2,000km의 공간적 간극을 두고 살았지만, 동일한 삶을 추구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 소쇄원을 산책하고 있는 나는 양산보와 500여 년의 시간적 간극을 두고 있지만, 양산보의 ‘소쇄’를 만끽하면서, 소강절의 ‘일반청의미’를 되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직장과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