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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이 중요해!

- 이미지프리즘으로 자기소개하기

by 시나브로 모모

3월의 시작과 함께 눈코뜰새 없이 바빠졌다.

올해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는 첫해라 교사도 학생도 적응할 것이 너무 많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1학년부장을 맡게 되었고, 공통국어와 현대문학감상 2개의 수업을 하게 되었다.

교직생활 20년을 향해 가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첫 시간은 떨리고, 설렌다.

올 한해 또 아이들과 어떤 생각과 마음을 나누게 될까. 궁금해지고 기대가 된다.


그러니 첫시간을 어떻게 시작할 할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십대 아이들과의 만남은 초두효과가 아주 커서 첫 수업에서의 나의 말과 인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간다. 그래서 나는 첫 만남에 공을 많이 들인다.

일단 교사와 학생 사이도 어색하지만, 자기들끼리는 더 어색한 상태로 멀뚱히 앞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의 눈동자에 긴장감이 감돈다. 자, 이제 이 딱딱한 얼음에 균열을 내 보자.


아이스브레이킹, 나에 대한 '진진가 게임'을 시작한다!! 문제는 간단하다.

나의 취미나 성격, 경험 등과 관련있는 그럴 듯한 문항을 4가지 만들고 그 중에 진짜를 찾게 하는 게임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선생님은 남자 셋과 살고 있다. 선생님은 EBS에서 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선생님은 6대륙에 있는 나라를 각각 하나씩은 여행해 봤다. 선생님은 지금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굉장한 자신감과 카리스마를 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활기찬 음성으로, 당당하게 교실을 가로지르며 약간은 과장된 연기력까지 더해주면 아이들은 어떻게든 맞춰 보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사실, 맞추는 게 더 이상한 말 그대로 '찍어야 하는' 문제인데 세상 진지하게 고심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관찰할 때면 나 역시 짜릿함을 느낀다.

정답을 듣고 난 아이들은 '왜 EBS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느냐며 투서를 넣어야겠다, 카메라 테스트 때문에 안된거냐, 혹시 아들만 셋이냐는 둥' 장난섞인 말들을 던지고 나도 적당히 장단을 맞추며 재미있게 한바탕 수다를 떤다. 그러면 어느새 교실을 감싸고 있던 얼음막은 산산조각이 난다.


따뜻한 기운이 한줄기 들어가고 나면 본격적으로 "자기소개"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기소개가 어렵다. 왜? 이름을 이야기하고 나면 딱히 할말이 없다. 그나마 요즘에는 MBTI를 살짝 덧붙여서 나름 구별짓기를 하는 모양인데, 결국 16가지 중의 하나의 특성으로 불리는 것이 '나다움'을 드러내는 입체적인 자기소개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쓰는 방법은 이거다.

'이미지프리즘'이라는 사진들을 활용하여 자신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질문은 다양하게 던질 수 있는데, 고등학교 입학한 첫 만남인만큼 이렇게 물었다.

'나의 중학생 시절은 ~로 기억된다' 혹은 '나의 고1은 ~로 기억되고 싶다'에 대한 이야기와 어울리는 이미지카드를 고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 보자.


우리가 서로의 외모는 볼 수 있지만 내면의 모습은 보여줄 수 없다. 사실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 행복, 슬픔, 즐거움, 분노 등 우리가 느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어 주는 것을 우리는 '형상화'라고 하고, 그것의 대표적인 전략이 '비유'다.

서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두 대상을 잇는 공통점을 발견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활동은, 아주 높은 수준의 사고력을 필요로 한다. 심지어 공통된 속성이 뻔하지 않고,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창의적이고 타당한 비유의 지위를 누리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는 매년 이 활동을 3월 첫 시간에 한다. 이 작업을 하고 나면, 처음에 학번과 이름으로 불리며 평면에 있던 녀석들이 점점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여 생명력을 갖는다.

높은 파도 아래 서핑하는 사람의 사진을 고른 아이는 자신이 넘어야 할 고난이나 시련을 피하지 않고 잘 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중학교때까지 가야금을 전공했다가 그만둔 사연을 이야기했다. 물고기가 창문 밖으로 나가는 사진을 고른 아이는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모습에서 뒤늦게 시작했지만 열정을 가지게 된 태권도에 대한 진심을 이야기한다. 망원경을 보는 사진을 고른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좀더 잘 들여다 봐야겠다며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꿈을 덧붙였다. 2002년 월드컵 때 광장에 모여 응원하는 군중들의 사진을 고른 아이는 축구에 대한 뜨거운 열기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불태워보고 싶다고 했다.

이제 나는 수업시간에 그 아이들을 보면,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모습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미래의 영화감독이 될 녀석이 문학 수업을 어떻게 자신의 꿈과 어떻게 접목시켜 나갈지 흐뭇한 상상도 하게 된다. 축구만큼 문학을 열정적으로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꿈도 꿔 본다.


아이들은 이미지카드를 고르면서 한번 더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보이지 않는 이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에서 생각은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하나가 뿌리를 내리면 깊이를 더해간다. 나는 그저 '판'을 깔아 줄 뿐이다.


고3 학생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감상 시간에는 질문을 좀 바꿔보았다. 3학년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이미 친해진 사이이기도 하고,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더 어색한 일이기도 해서 '문학'하면 떠오르는 생각, 감정, 지식, 경험 등을 자유롭게 뇌구조에 써보라고 했다. 다만 여기서도 '이미지프리즘'을 활용했는데 문학하면 떠오르는 가장 강력한 생각이나 감정과 연관된 사진을 고르고 왜 그 이미지를 골랐는지 문학과 연관지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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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라웠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솔직하게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냥'이라든가, '재미없고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무관심이나 시니컬함은 없었다.

실제로는 소설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봐서 문학에 대해 잘 모른다는 용기있는 고백도 좋았고, 문학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열쇠같은 것이라거나 내면과 호흡에 집중해야 하는 요가처럼 문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더 알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문학이 꼭 깨달음이나 자기성찰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몰입해 읽었던 소설이나 기억에 남는 시제목이 뇌구조 어딘가에 떠돌고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입시를 앞둔 고3들에게 수능과는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문학에 대한 본질과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되는가. 분명 질타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국어를 가르치는 이유가 소통의 도구를 잘 활용하고, 문학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임을 생각할 때 그 질타는 그냥 흘려 버릴 생각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아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수업 끝에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을 들려주었다. 우리의 만남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한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무게까지 감당하는 것임을 이야기했다. 막연히, 어렴풋이 이해가된다는 듯 19살 청소년기의 끝자락에서 그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환대의 시간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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