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 방류에 찬성한 역사적 맥락
지난 2023년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대단히 큰 쟁점이 됐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있는 방사능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및 방사능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문제 제기됐다. 사실 그 당시 글쓴이는 이 부분에 대해 또 다른 사실을 얘기하고 싶긴 했으나, 당연하게도 이러한 얘기가 이성적인 선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글쓴이 또한 일본의 방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며, 그런 것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맥락적으로 생략된 사실이 있다. 즉, 방사능 오염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단순히 일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 또한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가 전적으로 외면하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2023년 당시 해산물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지금도 그러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특히나 민주당 쪽 사람들이 확실히 더 그러하다. 이들이 일본에 대해 비판하고 방류 자체를 비판하는 것 까지는 글쓴이 또한 이해하고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는 것 또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의 근거는 바로 냉전 시기 미국의 핵실험에 있다. 인류가 현재까지 한 핵실험의 횟수를 보면, 총 2,055회 정도로 미국이 1,054회, 러시아가 715회 그리고 프랑스가 198회 정도 된다. 즉, 미국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많은 핵실험을 한 나라고 가장 먼저 핵개발을 한 나라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해 본 나라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서 방영한 만화인 네모바지 스폰지밥(SpongeBob SquarePants)은 글쓴이 세대 중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핵실험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뜬금없게 왜 스폰지밥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놀랍게도 스폰지밥은 이 주제와 연관성이 있다. 스폰지밥에서 등장하는 도시 이름이 비키니 시티(Bikini city)다. 스폰지밥을 본 사람이라면, 만화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예를 들어, ‘폭탄파이’ 에피소드의 경우 작중 마지막에 핵폭발 장면이 등장한다. 뿐만아니라 만화에서도 무언가가 터질 때 파괴력과는 상관없이 버섯구름이 종종 등장한다.
그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스폰지밥에 등장하는 도시이름인 비키니는 사실 태평양에 있는 비키니 섬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비키니 섬은 과거 냉전시기 미국의 핵실험 장이었던 곳이었다. 이 비키니 섬은 태평양 마셜 제도에 있는데, 미국은 여기서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모두 67차례의 수중 핵실험을 진행했다. 특히나 1954년 3월 1일에 실행된 미국 최초의 수소폭탄인 캐슬 브라보(Castle Bravo)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최소 1,000배에 달하는 위력이었고, 핵실험 이후 마셜 제도는 방사능에 노출됐다. 많은 사람들이 비키니라고 하면 여성들이 몸매를 자랑하기 위해 입는 수영복의 이름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이 복장이 이후 유행한 것도 미국이 자신들의 핵실험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즉, 핵폭탄만큼 파격적인 패션이라 해서 비키니가 탄생했다는 얘기다.
2019년 국내 언론사인 경향신문에서 “핵실험 60년 마셜제도···후쿠시마보다 최대 1000배 방사능”이라는 썸네일의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냉전 시기 미국이 비키니 섬에서 한 핵실험은 횟수로만 보자면, 1992년까지 미국이 실행한 핵실험 1,054건의 6%에 해당한다. 즉, 비키니 섬은 미국의 초강력 핵무기들의 집합소였다. 마셜 제도에서 직접 연구를 진행한 미국 콜롬비아대 연구진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마셜 제도 각지에서 채취한 토양 샘플을 분석한 결과, 모두 11개 섬에서 아메리슘241과 세슘137 같은 방사성물질을 발견됐다고 한다. 특히 이 가운데에는 대표적인 핵 재난 지역으로 지목되는 구소련의 체르노빌이나 일본의 후쿠시마보다 10배에서 최대 1,000배까지 많은 방사능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즉, 그 당시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방사능 덩어리가 태평양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이런 방사능 덩어리 지역에 폴리네시아인 7만 5,000명이 지금도 살고 있다.
거기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 러시아와 더불어 프랑스 또한 핵실험을 매우 많이 했다. 2021년 3월 9일 프랑스 탐사보도 매체 디스클로즈는 “프랑스 정부가 폴리네시아에서 1966년부터 1996년까지 193차례 핵실험을 하면서 환경·보건에 끼친 피해를 축소·은폐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으며, “보통 핵실험에 따른 보상이 이뤄지는 국제적 기준보다 5배 이상 많은 방사능 피폭량이 확인된 주민만 1만 1,000명에 달하며, 1970년대 폴리네시아 인구 11만명 대부분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의 피해를 본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참고로 미국과 소련은 쿠바 미사일 위기 1년 뒤인 1963년에 핵실험을 제한하는 ‘부분적핵실험금지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의 경우 지하핵실험을 제외한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즉, 1963년부터 미국과 소련은 이 조약에 따라 지하에서만 핵실험을 했다. 간혹 국내뉴스에서 보도됐던 북한의 핵실험이 지하핵실험인 이유는 그것이 방사능 차단에 있어 다른 핵실험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하핵실험이라고 해서 방사능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핵실험들에 비해 방사능 차단 효과가 강하다. 그래서 지하핵실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런 조약을 전혀 체결하지 않았기에 앞서 기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태평양에서 방사능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며 1996년까지 수중 핵실험을 진행했다. 즉, 그 당시 진행한 핵실험으로 방사능이 지금도 태평양을 떠돌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글쓴이는 지난 2023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류 문제에서 일부 인사들의 주장이 다소 부풀려지거나 맥락적으로 생략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그 당시 2011년에 만들어진 태평양 전체가 오염되는 모 연구소 추정 시뮬레이션 영상이 12년 만에 인터넷과 정치 커뮤니티 및 유튜브에서 떠돌아 다녔는데, 사실 이러한 영상은 냉전 시기 미국과 프랑스가 태평양에서 한 핵실험이 어느 정도인지를 무시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글쓴이를 방류 찬성론자로 모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자면, 글쓴이는 작년 9월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집회에 나갔었고, 연대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실관계의 문제에 있어서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글쓴이는 그 점에서 미국의 핵실험 문제를 얘기하며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도 같이 얘기한 거다. 과학적인 부분에서의 분석은 글쓴이가 과학관련 지식이 매우 부족하기에 제대로 된 사실관계를 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얘기하겠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한 자료가 보여주듯이, 과거 미국이 핵실험을 한 비키니 섬 지역의 경우 최소 후쿠시마 보다 10배 최대 1,000배 이상의 방사능을 기록했다. 그 당시에는 방사능에 대한 위험성이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방사능 폐기물 처리도 현재에 비해 소홀했다. 괜히 비키니 섬의 현실이 괜히 그런 게 아니다.
거기다 방사능의 위험성이 알려진 것도 미소냉전이 격화되면서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지금까지 총 1,054번의 핵실험을 진행했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1년 1월 27일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서 원폭 실험이 시행되었으며, 1963년까지 총 126회의 핵실험이 진행됐다. 모두 방사능 피폭 위험성이 매우 높은 대기 중 핵실험이었다. 핵실험은 피폭 지역 부근에는 가깝게는 폭심에서 2, 3킬로미터, 멀게는 10킬로미터 지점에 병사들을 대기시켜 놓은 다음, 이들에게 원폭의 강렬한 섬광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고글 외에는 아무런 보호 장비도 지급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됐다.
심지어 미국의 관광도시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도시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피폭도 많이 됐다. 1953년 5~6월 네바다 실험장 동쪽에서 14,000마리의 양 중 4,500마리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1955년 목장주들이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연방지법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1956년 9월에 열린 재판에서 주민들이 패소하는 웃지 못할 결과가 나왔다. 그 당시 정부는 방사능이 인체에 해를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1978년 미국의 카터 정부에서 원자력위원회에 대해 원자탄 실험 자료의 공개를 명령하면서 미국 내 방사능 피폭의 실상이 드러났다. 1980년 방사능 피폭의 실상을 조사한 미 하원 조사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실행한 대기 중 핵실험의 최대 아이러니는 바로 미 국민이 미 핵무기의 유일한 희생자가 됐다.”
2017년 프레시안 기사인 “미국 핵무기 최대 피해자는 미국 국민”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핵 실험인 1945년 7월 트리니티를 시작으로 대기 중 핵실험이 금지된 1963년 8월까지 시행된 수백 차례의 핵실험으로 적어도 1백만 이상의 미국인이 암과 기형아 출산 등의 고통을 당했다.” 1986년 4월 소련 프리피야트(현재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는 체르노빌 사고는 전 세계인이 아는 대형사고였다. 그 당시 소련은 이 사건을 3일간 은폐했다가 전 세계의 비난과 비판을 받았다. 체르노빌 사고로 당시 사망자는 31명이었고, 이후 5년간 7,000명이 사망했으며, 70만 명이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 뉴욕타임스의 환경 전문 기자인 케이스 슈나이더는 “한 번의 (대기 중) 핵폭발은 체르노빌과 맞먹는 양의 방사능을 뿜어낸다.”고 말하면서, 네바다 핵실험은 “미국 역사상 가장 무모한 과학 실험”이라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 슈나이더는 “미국 핵무기 산업은 네바다 핵실험에 의한 방사능 오염을 30년간 은폐했다.”라고 지적했다.
그 외에도 미국은 핵무기 배치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번 글쓴이는 10월 16일 브런치 스토리에 “북한과 미국의 핵무력 대치와 냉전”이라는 주제로 미국이 어떻게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했는지를 설명한 적이 있다. 이승만 정권 말기인 1958년부터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했다. 그해 1월에만 150개의 핵탄두를 배치했으며, 1970년대까지 총 900개의 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했다. 즉, 한반도에 배치된 핵무기는 북한의 김일성 정부를 향해 조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핵무기는 중국이나 러시아 견제도 됐다.
단순히 핵무기가 한반도에만 배치된 것은 아니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자 『미국, 제국의 연대기』의 저자 대니얼 임머바르(Daniel Immerwahr)는 수백 개의 핵무기가 한국과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에 배치됐으며, 1960년대 전반에 걸쳐 1,000개가 넘는 핵무기가 일본 오키나와에 배치됐었다고 주장했다. 거기다 하와이와 알래스카, 미드웨이 제도에 얼마나 많은 수의 핵무기가 저장되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도 책에 썼다. 이와 같은 미국의 핵무기 배치는 사건사고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바이킹들이 정착한 곳으로 알려진 그린란드는 사실상 덴마크의 식민지였는데, 덴마크 정부는 냉전 시기 미국을 위해 그린란드 툴레에 미군 기지를 만드는 것을 허용했다.
사고는 여기에서 터졌다. 비록 핵무기가 그린란드에 배치되지는 않았지만, 미 공군의 B-52 폭격기가 암암리에 그린란드 상공을 매일같이 비행했다. B-52 폭격기는 과거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B-29 폭격기를 업그레이드한 기종이었다. 참고로 B-52 폭격기는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을 무차별 폭격하는 데 사용된 폭격기이기도 하다. 미군의 B-52가 암암리에 그린란드 상공을 비행한 이유는 소련의 공격을 상시 타격하기 위한 공중 비상 대기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실제로 1960년대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Strangelove)’는 이것을 주제로 그린란드에서 일부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68년 수소폭탄을 나르던 3대의 비행기가 그린란드에 비상 착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듬해에 B-52 폭격기가 수소폭탄을 싣고 툴레 근처에서 비행하다가 추락하는 대형사고가 벌어졌다. 다행히도 핵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속 800km의 폭격기가 얼어붙은 해빙을 뚫고 들어가면서 약 8km에 걸쳐 잔해가 흩어졌다. 이로 인해 플루토늄이 충돌 지점 전역으로 누출됐다. 미 공군을 얼음이 녹아 방사능 잔해가 바닷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서둘러 사고 현장을 수습했다. 수거된 잔해는 75척의 대형 선박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이 당시 미국은 모든 잔해를 다 수거해갔다고 하지만, 2008년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그 당시 잃어버린 핵폭탄 1기를 못 찾았다고 한다.
비록 비교적 괜찮은 수습으로 마무리 된 사건이지만, 이와 같은 사고가 다른 곳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미국이 그나마 여기서 수습을 잘한 이유는 아마도 2년 전에 발생한 사고 때문일 것이다. 1966년 B-52 폭격기가 스페인의 팔로마레스 마을 상공에서 추락했다. 당시 폭격기에는 4개의 수소폭탄이 탑재되 있었는데, 이는 히로시마 원폭의 75배에 달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폭격기의 일부는 초등학교에서 약 73m 떨어진 곳에 추락했고 다른 조각은 예배당에서 약 137m 떨어진 지표면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2기의 폭탄이 손상되면서 뿜어져나온 방사성 물질 플루토늄과 우라늄이 인근 지역을 뒤덮었다. 미군이 핵무기 수거 장비들을 땅에 파묻으면서 300만㎡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됐다. 물론 그 당시 스페인은 파시스트인 프랑코가 30년가까이 독재정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강 덮고 넘어갔다.
사고 직후 미국은 뒷수습에 나섰지만 아직도 5만㎡에 이르는 토양이 심각하게 오염된 채 남아있었다. 당시 미국은 1300㎡의 흙을 걷어내 자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핵폐기물 저장소로 옮겼지만, 이는 오염된 토양의 0.43%에 불과했다. 2019년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참고로 스페인의 경우 현재도 핵 오염 토양을 따로 보관할 장소가 없어, 자연 반감기로 방사능이 소멸하기까지 수천 년이 걸릴 전망이라고 한다. 이처럼 미국의 핵무기는 국제적으로 이와 같은 문제를 일으켰다. 미국이 국제적으로 일으킨 사고인데에 비해 이러한 사실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까지 미국의 핵실험과 핵무기 그리고 사고에 대해 알아봤다. 이렇게 놓고 보자면, 미국이 지난 2023년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찬성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미국 입장에선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는 자신들이 지금껏 과거에 벌여온 일에 비해 새발의 피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니 이와 같은 결정을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와 더불어 미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지구환경에 해를 가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미국에 대한 무비판적인 사고로 인해 우리는 이러한 사실조차 제대로 모른 채 살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핵 위협 원자력 문제라는 의제에서 미국을 비판적으로 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