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옹다옹하다 Sep 16. 2023

고양이가 꾹꾹이를 하는 이유

엄마의 독서

 고양이의 핑크색 발바닥을 코에 갖다 대면 고소한 냄새가 났다. 침대나 소파에 누워 있으면 다옹이는 이따금씩 배 위로 올라와 앞발로 나를 꾹꾹 눌렀다. 고양이한테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위로 중 하나였다. 꾹꾹이를 할 때는 항상 그르렁 소리를 동반했다. 몸에다 귀를 대면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순간 고양이와 강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 위에서 다옹이는 뒷발로 중심을 잡고 앞발을 사용해 정성껏 힘을 가했다. 누르면서 발가락을 벌려 발톱을 세웠다가 발을 들어올리면서 발톱을 집어넣었다. 아내는 내 뱃살을 잡고 덜렁덜렁 흔들었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서 당신한테만 하는 거라며 모욕감을 줬다. 다옹이가 자기한테는 안 해주니 괜히 내게 심통을 부렸다. 정말 토실토실한 뱃살 때문이라면 더욱이 살을 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더 찌워야 했다. 다옹이가 언제든지 올라와서 마음껏 밟을 수 있는 폭신폭신한 방석이 돼야만 했다. 아내는 자신도 최상위 서비스, 꾹꾹이 안마를 받고 싶어서 다옹이를 배 위에 수차례 올려다 놓았다. 하지만 꾹꾹이는 아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과 고양이의 만족 온도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신체 부위뿐 아니라 이불이나 쿠션 같이 푹신한 물체 위에서도 이루어졌다. 젖먹이 때 새끼 고양이는 수유를 자극하기 위해 앞발로 어미 배를 반복해서 누르는 행위를 했다. 유아기 시절의 행동 잔재가 성묘에게도 남아 있는 것이었다. 꾹꾹이는 엄마와의 유대감과 깊이 연결되었다. 고양이를 자극시켜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사람에게 할 때는 일종의 애정 표현과 같았다.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기 때문에 집사를 향한 신뢰를 의미하기도 했다. 꾹꾹이를 하는 동안 얼굴을 보면 말로 형언할 수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발로 내 배를 지그시 누르며 어미의 젖을 먹고 형제들과 뒹굴던 시절을 떠올렸을까. 종일 자신을 따뜻하게 품고 온몸을 핥아주며, 맛있는 젖을 물려주던 엄마 고양이를 추억하고 그리워했는지도 몰랐다.  


 엄마가 내 책장에 있던 소설을 읽고 있었다. 평소 안 쓰던 안경까지 쓰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 간만에 안경 쓰고 독서하니까 아주 이지적인데. 근데 갑자기 웬 소설을 다 읽으셔. 하도 지루해서. 엄마는 단답 후 다시 시선을 책으로 돌렸다. 오랜만에 본가에 온 장남을 본척만척 거들떠도 안 보는 게 서운할 법했으나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독서에 더 몰두하길 권장하고 싶었다. 엄마는 시골에서 작은 화장품 가게를 운영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근처 상가 사람들이나 동네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마저도 아닐 땐 가게의 한 구석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을 보았다. 계속 책 읽으세요. 방에서 티브이 보고 있을게. 이따 아빠 퇴근하면 나가서 밥이나 먹자고요. 그나마 짧은 대답마저 돌아오지 않았다. 안경을 쓴 모습을 보니 아주 오래전에 사진에서 본 처녀 때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생과 내 사진은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엄마의 사진은 별로 없었다. 우리를 낳고 나서 엄마는 사진 속 주인공이 아니라 사진사로 역할을 바꾸었다. 어딘가에 분명 있을 텐데. 엄마가 주인공인 사진을 찾아 서랍장을 다 뒤졌다. 얼마 후 드디어 환하게 웃는 이십 대 여성들의 단체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찍는 순간의 소리가 저장되는 기능이 있다면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까르르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엄마는 검은 바탕에 흰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엄마의 코디는 전혀 촌스럽지 않았고 지금의 유행에도 뒤처지지 않았다. 미소는 과하지 않고 절제되었지만 싱그러움이 흘러넘쳤다. 검은 뿔테안경은 엄마의 얼굴을 지적이고 고혹적으로 완성했다.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마음이 아팠다. 나는 어미의 젖을 눌러가며 양분을 빨아먹고 성장한 새끼 고양이와 같았다.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마냥 행복한 회상에 빠지는데 과연 엄마도 그럴까. 사리 분별 못하고 철없던 시절 엄마와 다툰 적이 있었다. 어쩜 너는 네 아빠랑 똑같니. 날카로운 대화의 말미에 엄마는 말했다. 다른 독한 말은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 말만큼은 심장을 후벼 파듯 아팠다. 그 문장 속에 담긴 엄마의 아픔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삶은 행복했을까. 주인공으로 데뷔해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살다가 나이가 들면서 조연으로, 단역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영영 잊혀진 어느 배우처럼 외롭고 두렵지는 않았을까. 목청껏 울고 싶어도 어미라는 역할 때문에 속으로 삼켜야 했던 수많은 밤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간혹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사진 속 엄마가 지금의 아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랬다면 아마 나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겠지. 꼭 엄마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엄마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 올 때 됐다. 닭죽 끓여 놓은 거 있으니까 그냥 집에서 먹자. 엄마의 독서가 일단락된 것 같았다. 엄마의 사진을 김승옥 소설의 한 갈피에 끼워 넣었다. 이제 엄마의 젊음과 내 이상은 같은 페이지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