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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Sep 18. 2023

고양이와 집순이의 상관관계

즐거운 나의 집

  집순이에게도 등급이라는 게 있었다. 외출을 좋아하지 않고 집에서 시간 보내기 좋아하는 사람을 집순이, 집돌이라고 칭하였다. 한 단계 더 들어가 자발적 집순이냐 비자발적 집순이냐로 순정과 비순정의 급을 나눌 수도 있었다. 순수하게 집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을 자발적 집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타인과의 교류보다는 사적인 일상 중 자기와의 조우, 거기서 오는 만족이 더 중요했다. 비순정 집돌이의 경우 외부에서 발생한 요소가 집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만들었다. 평일에 일하느라 지친 심신의 휴식을 위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혹은 저질 체력이나 만성피로 같은 신체적인 이유 때문에 집돌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아내와 나는 순정과 비순정의 중간쯤에 소속을 두고 있었다. 우리는 정체성이 모호하고 소속감도 희박하여 아무래도 상관없는 부류였다. 결혼한 지 4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아이가 없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주말에 집에서 종일 빈둥거리는 것은 꿀처럼 달콤했으나 지나고 나면 다소 허무하게 느껴졌다. 몸은 휴식이 주는 쾌락에 거뜬히 빠져들어서 과하게 쉬었음에도 새로 월요일을 맞이하는 게 더 버거울 때도 있었다. 다른 도시의 맛집과 볼거리를 검색해서 차를 몰고 다녀오곤 했다. 여행이 주는 자극은 무료한 일상의 활력소가 되었다. 장거리 여행의 경우 보통 차에서 왕복 네다섯 시간을 보냈다. 결코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차 안에서 긴밀한 대화와 친밀감이 형성되곤 했다. 아내는 처음에는 졸음을 참아 가면서 운전대를 잡은 나와 눈을 맞췄다. 대화의 물꼬를 트고 막히지 않게 애썼다. 오빠, 피곤하면 내가 운전할까. 휴게소 들러서 커피 한 잔 마실까. 그 마음 씀이 너무 예뻐 아내에게 한 번도 운전을 맡기진 않았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출발과 동시에 보조석의 시트를 끝까지 젖혀 몸을 눕힌 채 코를 골고 숙면을 취했다. 낯선 도시에서 얻은 즐거움의 기록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휴일을 마감하면 고단하긴 해도 뿌듯했다. 직장 동료와 친구들은 보기 좋다며 부러워했다. 매인 것이 없어 잠시 자유로운 것뿐이라고, 나중에 언젠가는 대가를 톡톡히 치를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고양이는 나를 비자발적 집돌이로 만들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집 이외의 장소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양이에게 자기 영역을 사수하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아옹이와 다옹이가 집에 와서 한 최초의 행동은 소파 밑으로 숨는 것이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구석으로 도망쳐 밥도 안 먹고 배변도 제대로 못했다. 처음에는 없는 존재 취급하듯 그대로 둬야 마음의 문을 연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녀석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한동안 거실에서 이불을 펴고 잤다. 공간에 대한 적응이 이루어지자 비로소 사람에 대한 경계도 해소되었다. 고양이는 독립성이 강해서 사람을 향한 의존도가 낮았다. 배변, 배뇨도 척척 잘해서 물과 사료의 자동 급여만 가능하면 장시간 외출해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사람을 향한 고양이의 마음이 아니었다. 녀석들은 오히려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했다. 문제는 바로 고양이를 향한 내 일방적이고 간절한 순애였다.

 아옹이와 다옹이가 찾아온 후 아내는 비로소 본색을 드러냈다. 여행은 고사하고 동네 카페라도 나가자는 제안에도 아옹이, 다옹이 핑계를 댔다. 교감 부족의 결과는 메마른 관계와 파행뿐이라며 한사코 외출을 거부했다. 고양이를 볼모로 잡고 부리는 아내의 게으름은 가소로웠지만 나 역시 녀석들과 함께하고픈 욕망을 떨치기 어려웠다. 신기하게도 고양이를 향한 순정은 공유하고 있는 공간까지도 사랑하게 만들었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 아내의 퇴근이 늦는 날은 일부러 밖에서 볼일을 만들곤 했다. 아무도 반겨 주지 않는 적막한 공간으로 혼자 들어가는 일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즐거운 나의 집'이란 노래는 19세기에 만들어진 미국의 가곡이었다. 곡이 쓰인 지 40년이 지나 남북전쟁이 터졌는데, 빨리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아내와 같이 귀가할 때 그녀는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고양이가 있는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마침내 진정한 일등급 집순이가 되어버렸다.


 집을 사랑한 적이 과거에도 있긴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매년 여름이 되면 엄마는 동생과 나를 번갈아 외가로 보냈다. 외갓집은 디귿자형의 전형적인 한옥집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한약방을 했다. 한약재 향이 진하게 풍기는 방에서 외할아버지에게 한글과 천자문을 배우고 방학 숙제를 했다. 비가 오면 마루에 누워 수박을 먹으며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후드득 빗방울 소리를 들었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깨면 머리맡에서 외할머니가 파리채로 모기와 파리를 쫓고 있었다. 근처에 과자를 살 수 있는 작은 구멍가게 하나 없었지만 부뚜막의 가마솥을 열면 먹을 게 즐비했다. 하루는 누룽지를 아작아작 깨물어 먹다가 썩은 이가 부러졌다. 밤이 되면 모기장을 펴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사이에서 모시 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까끌까끌한 감촉이 싫었지만 덥지 않아 좋았다. 그로부터 약 십여 년 후에 외할아버지의 장례식도 그 집에서 치러졌다. 엄마는 잠시 쉬지도 않고 꺼이꺼이 서럽게 오열했다. 군 입대를 한 달 앞둔 나는 어릴 적 누워 잠들던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쉰 목청으로 울어가며 눈물을 훔쳤다. 돌이켜 보니 나는 외갓집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외조부모님과 공유했던 시간을 사랑한 것이었다.

 노을이 질 무렵이면 외할아버지가 운전하는 커다란 자전거 뒤에 올라타 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자전거는 나를 어디든지 데려다줄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내게 노래나 한 곡 뽑아 보라고 했다.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나면 호주머니에서 박하사탕을 한 움큼 꺼내 주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첫해 반에는 한글도 못 뗀 애들이 수두룩했다. 외할아버지에게 받은 문자 유산으로 친구들 앞에서 교과서를 멋들어지게 읽었다. 자전거 안장 위에서 외할아버지의 허리춤을 꽉 잡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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