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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Oct 18. 2023

언더독의 반란

비록 오늘이 어두워도 내일이 슬프지 않은 건

 주말 아침, 알람보다 나를 먼저 깨운 건 아옹이의 엄살 섞인 비명이었다. 아옹이의 발은 오늘도 뜨거웠다. 다옹이의 맹공격을 피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아나느라. 알람은 오전 7시에 맞춰져 있었다. 6시쯤이면 화장대 위로 다옹이가 사뿐 올라왔다. 녀석은 인질의 목에 칼을 대고 협박을 하듯 실크벽지를 앞발로 긁으며 연거푸 야옹 소리를 냈다. 안 돼. 여긴 우리 집(자가)이 아니야! 악몽에서 깨듯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면 다옹이는 태연하게 내려와 나를 거실로 안내했다. 쟤 일부러 저러는 거야. 관종인가 봐. 아내가 뒤척이며 말했다. 잠이 깬 나는 녀석들에게 간식을 주고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 주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들어가서 다옹이의 엉덩이를 때릴 때는 힘이 약간 더 실렸다. 일찍 끊긴 잠이 성에 차지 않았다. 물을 한 잔 마신 다음 핸드폰을 들고 소파에 누웠다. 아옹이와 다옹이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나를 깨웠다는 듯, 드러누워 있지만 말고 심판이나 좀 보라는 듯 맹렬한 공방이 오고 갔다. 난투극이 시작되자 역시나 아옹이는 바닥에 깔려 배를 보이고 다옹이는 그 위에서 가차없는 공격을 가했다. 아옹이는 종합격투기의 그라운드 자세를 하고 누운 채로 싸웠다. 그라운드는 스탠딩의 반대말로 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누운 채로 공격과 수비에 임하는 자세였다. 스탠딩 자세가 손과 발을 이용한 타격 위주라면 그라운드는 주짓수와 레슬링이 기본이 되는 관절 기술을 사용했다. 일단 상대방에게 깔리는 것 자체가 타격에 불리하고 공격당할 부담이 커서 그라운드 자세는 다소 수비적이고 소극적인 포지션이라 할 수 있었다. 아옹이는 앞발로 다옹이의 목 부위를 조른 후 뒷발로 발버둥치며 얼굴이나 몸 부위를 마구 가격했다. 하지만 그라운드 자세에만 능한 아옹이와는 달리 다옹이는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어서 승부는 다옹이의 압승으로 싱겁게 끝나곤 했다. 기개 좋게 싸움을 걸기도 했던 아옹이는 늘 패배를 인정하는 외마디 울음으로 항복을 선언하고 도망쳤다. 따지자면 다옹이가 강자, 아옹이는 약자였다. 스포츠에서 강팀과 약팀이 맞붙을 때 주로 약팀을 응원했다. 성향이 좀 그랬다. 개싸움에서 아래에 깔린 개를 응원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언더독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었다. 우리말로 하면 동병상련, 측은지심 비슷하려나. 정치, 스포츠, 문화 등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말로, 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약자를 더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적 현상을 일컬었다. 사람들은 약자라고 믿는 주체를 응원하고 심리적 애착을 부여했다. 간혹 언더독이 강자인 탑독을 누르고 승리했을 때 극적인 효과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내가 프로야구팀 중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것이, 슬램덩크에서 서태웅보다 강백호를 지지하는 것이, 태생부터 약하고 아픈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언더독 신드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소심하고 겁 많고 싸움 못하는 아옹이의 편에 서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끌림이었을지도 몰랐다.

 

 지구상에서 나와 가장 닮은 존재를 꼽자면 그건 바로 아버지와 남동생이었다. 타고난 성향에 자라온 환경까지 고려한다면 동생이 가장 유사한 인격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덩치가 크고 건강했던 나에 비해 동생은 왜소하고 병약했다. 첫째인 나를 임신했을 때 기대에 부풀어 태교도 하고 먹는 것도 잘 챙겼는데 동생 때는 그러지 못했다며 엄마는 내내 미안해했다. 세 살 무렵 동생은 희귀성 심장질환을 앓았다. 80년대 초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진단도, 이렇다 할 치료 사례도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몸부림쳤다. 지극정성이 통했는지 기사회생으로 어느 재단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6개월간 머물며 수술을 받았다.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동생은 해맑게도 목 밑에서부터 명치 아래까지 절개한 흉터를 훈장처럼 보여주며 말했다. 형, 형은 미국 가본 적 없지?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게임에 먼저 눈뜬 형제는 엄마의 눈을 피해 오락실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수많은 고전 게임이 있었지만 그중 헐크호건과 워리어 등 프로레슬링 스타가 등장하는 격투 게임이 있었다. 프로레슬링이 진정한 스포츠가 아니라 각본이 존재하는 연출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사각의 링 안에서 벌어지는 격투와 드라마는 아이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각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상대를 제압하면 점차 강한 대전 상대가 나타났다. 이윽고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최종 보스가 등장했다. 끝판왕까지 이기려면 여분의 동전이 필요했지만 이겼을 때의 쾌감은 말로 할 수 없었다. 

 분별없고 지각없던 나는 유약한 동생을 보호하지는 못할 망정 헤드록과 드롭킥 등 프로레슬링 기술을 시전하며 못살게 굴었다. 항상 넘어지고 떨어지고 자주 앓던 동생이었다. 가족, 학교, 마을, 군대, 직장, 국가, 내가 속한 사회 집단에서 언더독이 아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유년에는 그런 와중에 밑에 동생이 깔려 있었을 뿐 우리는 언제나 같은 약자 그룹에 속해 있었다. 동생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약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악착같은 오기로 자신을 꾸미기 시작했다. 체격은 작지만 깡다구가 세서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에는 자주 싸우고 집에 들어왔다. 그 날이 선 배짱과 담력을 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나는 그때부터 동생을 괴롭히지 않았다. 우리의 공통점은 게임과 만화책과 무협지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만화 속 세상에서는 언제나 언더독이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은 가난과 약함을 물려받았지만 피나는 노력과 열정을 통해 역경을 극복했다. 약하고 겁이 많아 무시당하던 캐릭터가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각성하여 성장하는 스토리는 항상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것이 문학적 감수성의 시초가 되었을까. 이과와 공대로 진로를 정한 나와는 달리 동생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아동문학을 공부했다. 대학생 때 동생이 쓴 '안개주의보'라는 소설을 읽고 혹평을 쏟아냈다. 윤대녕의 '대설주의보'를 따라한 것이 아니냐. 이 정도는 안 배운 나도 쓸 수 있겠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무시하던 녀석은 성장 소설의 주인공처럼 홀로 외로움 싸움을 계속했다. 세상이 던지는 시련과 고초의 테스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도망칠 곳도 없는 작은 링 안의 고독한 복서처럼 녀석은 반복해서 주먹을 내뻗었다. 동생이 어느 지역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되던 날 축하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신춘문예의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 같다. 녀석이 해맑게 답했다. 형, 형은 신춘문예 당선돼 본 적 없지?

 만화와 달리 현실에서 언더독이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비록 오늘이 어두워도 내일이 슬프지 않은 건. 녀석이 쓴 책의 제목처럼, 설령 막판에 가서 지더라도, 승리가 없는 고적한 싸움일지라도, 언더독의 고군분투를 언제나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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