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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Feb 20. 2024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분실과 습득의 달인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프로크루스테스란 기이한 도적이자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이름은 '잡아 늘이는 자'라는 뜻을 가졌다. 그는 아테네 인근 강가에서 강도질을 하며 살았는데 여인숙을 차려 놓고 손님이 오면 자신의 쇠 침대에 눕혔다. 키가 침대보다 커서 몸이 밖으로 튀어나오면 침대 크기에 알맞게 머리나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고, 몸이 작으면 침대의 길이만큼 늘려서 죽였다. 그의 침대에는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서 어느 누구도 침대에 키가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용어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로 자기 생각과 기준에 맞춰 남을 뜯어고치려는 행위,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독단과 횡포를 말한다. 악당으로 등장하는 그는 테세우스라는 인물에게 자신이 행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다.


 한 주의 시작을 의미하는 월요일 출근, 보안 경비 키를 찾다가 그만 지각하고 말았다. 식탁 위 작은 바구니에 차 키와 지갑, 회사의 보안 키를 항상 두는데 보안 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금요일에 입었던 옷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볼일을 보다가 만 것처럼 찝찝한 마음에 시간을 지체했다. 사실 아침에 끼니도 해결하고, 변수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시간 여유를 두어야 했다.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촉박하게 시간 설정을 한 탓이었다. 시간 배분과 행동 패턴, 이동 동선 등 모든 것을 동기화해서 변수 없이 일정한 루틴을 짜야 하는 걸 알지만 나라는 인간은 도무지 그런 것에는 적합하지가 않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덤벙대는 일은 아내가 선수라는 사실이었다. 아내 덕분에 내 실수와 덜렁거림은 매번 미약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얼마 전에도 커피숍에서 결제하다가 계산대에 태블릿 PC를 두고 왔다. 심지어 분실한 사실을 다음날이 돼서야 알고서 당당하게 찾아 왔다. 신기하게도 그녀는 잘 잃어버렸지만 결국엔 찾아내고야 말았다. 아마도 행위가 반복됨에 따라 대처 요령이 생긴 것 같았다. 내비둬. 집 어딘가에 있을 거야. 지가 손이 있어, 발이 있어. 아내라면 능청거리며 이렇게 말했을 텐데. 그녀는 방학이라 일어나 보지도 않고 태평하게 쿨쿨 자고 있었다. 코 고는 소리가 하도 우렁차서 차마 깨우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은 덕분에 다행히 정시에 도착해서 사무실 문을 열었다. 

 휴게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직원 둘이서 언쟁을 펼치고 있었다. 언성이 높아 얼핏 싸우는 줄 알았다. 자세히 귀 기울여보니 축구 국가대표 감독 경질과 선수간의 갈등, 축구협회의 무능력 등을 주제로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둘 다 알아주는 똥고집이라서 논쟁의 승패는 갈리지 않을 것이었다. 논리적, 객관적 증거를 들이대도 결국 인정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둘은 하필 정치적 성향도 달라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 논박을 즐겼다. 사람을 만나면서 기피하는 유형이 있는데,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도저히 곁에 두기 힘들었다. 쉽게 말해 박박 우기는 사람. 자신의 생각만이 맞다고 무조건 확신하는 사람, 그 생각을 남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사람은 절교만이 답이었다. 그 생각이 건전한 소신이어도 강하면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똥고집일 경우라면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세대는 누구나 다 똑똑하고, 남에게 혼나면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애쓰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하고 깨우치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단순히 말을 통한 자기주장으로 남을 가르치고 설득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얇은 대인관계 속에 흘려보낼 수 있는 타인이라면 그냥 떠나보내면 그만이지만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 가족이나 직장 동료라면 마주하는 시간이 지옥 같을 수도 있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들 때문에 휴게실에 두 사람만 남고 다 도망쳤다. 세상에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은데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걸로 저렇게 열을 내고 있을까나. 누군가 비꼬느라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내비둬. 매사에 열정이 넘쳐서 그랴. 열정이!


 오후에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서 난임 검사를 받았다. 어느덧 결혼 4주년을 맞았다. 처음 2년은 신혼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 피임을 했고 그 후 2년간은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접수 번호표를 뽑고 한 시간이나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대기자 중 더러는 임산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임신한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초조하게, 누군가는 지루하게, 혹은 설렘을 안고 자신의 번호가 불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담당의는 인상이 차가웠고 말투는 까칠해서 냉소적으로 느껴졌다. 아직까지 자연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난임이라며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일사천리로 치료를 진행해야 된다고 했다. 장기전으로 가면 지쳐서 감당이 안된다고 5~6개월 집중해서 승부를 보자고 했다. 무언가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혼내듯 얘기하는 탓에 아내는 불만을 토로했다. 건조하고 고압적인 말투가 거슬리긴 했지만 때에 따라서는 감정을 배제한 진단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차 안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떤 아빠가 될 거냐고 물었다. 그냥 친구 같은 아빠면 되지. 건성으로 말하는 내 말에 아내가 답했다. 친구는 어려울 거야. 올해 출산한다고 해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오빠 나이가 오십이 훌쩍 넘어. 

 집에 들어오니 며칠 전 아내가 산 운동화 상자에 아옹이가 거대한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무념무상에 깊이 빠져든 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상자를 보며 아내는 귀엽다고 폭소를 터뜨렸다. 사람은 누구나 약간씩은 폐쇄 공포증을 갖고 있어서 밀폐된 장소나 몸이 딱 맞는 좁은 공간에서는 불편함을 느꼈다. 반면에 영역 동물이자 고독을 즐기는 고양이는 습성상 밀폐된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또한 상자는 숨어서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아옹아, 아빠가 만약 프로크루스테스였다면 네 머리와 꼬리, 삐져나온 살집은 다 잘려나갔을 거야. 아옹이를 쓰다듬으며 다짐했다. 만약 부모가 된다면 아이를 내 생각과 욕심, 규정에 맞게 재단하지는 말자고. 개똥철학에 불과한 엉터리 잣대에 아이를 난도질하며 키우지는 말자고. 친구보다는 할아버지에 가까워도 있는 그대로 아이와 교감하고 성장을 지켜보자고 결심했다. 오빠, 이거 잃어버렸어? 차에 흘렸었나봐. 놀랍게도 아내의 손에 파란색 보안 키가 쥐어져 있었다. 결국 어디선가 다 나온다고 했지? 아내는 마치 그렇게 이야기하듯 화사하게 미소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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