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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Feb 04. 2024

제 이름은

탈모와 추남

 제 소개를 하죠.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아차, 전 아직 이름이 없어요. 엄마가 지어주지 않았거든요. 매일 사료를 가져다주는 못생긴 남자가 절 탈모라고 부르긴 해요. 몸은 온통 흰색인데 머리에만 검은 털이 조금 나 있거든요. 남의 이름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닌데. 남자야말로 노화를 몸소 체감하며 소중한 머리카락을 조금씩 떠나보내고 있죠. 사실 좀 짠해요. 저는 남자에게 추남이라고 불러요. 그건 저를 탈모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복수가 아니고 그냥 팩트예요, 팩트. 제겐 편의상 그냥 아깽이라고 불러 주세요. 우리끼리 이름은 크게 의미가 없어서 개의치는 않아요. 이름이 없다고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름이란 인간이 편의상 통상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관념에 불과할 뿐 제가 귀여운 아깽이라는 실체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죠. 제 입으로 귀엽다고 하니까 쑥스럽네요. 하지만 제 탐스럽고 토실한 몸매를 좀 보세요. 확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앙증맞긴 하죠.

 제가 종일 하는 일은 엄마를 기다리며 창고의 한 모퉁이에 숨어 잠을 자는 거예요. 햇살이 따스해지면 창고 밖으로 나가 형, 누나를 따라 광합성을 하기도 하죠. 한 살 터울의 형제가 넷인데 아빠가 같은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이부형제일 가능성이 높겠죠. 그래서인지 형, 누나들은 저를 챙기지 않고 없는 고양이 취급할 때가 많아요. 저 여기 있어요. 여기 귀엽고 깜찍한 아기 고양이가 있어요. 괜히 주위를 뱅뱅 돌며 알짱거려도 거들떠보지 않죠. 자기들끼리 신나게 레슬링을 하고 사냥놀이도 해요. 간혹 집을 떠나 어딘가로 모험을 떠나는데 한 번도 끼워 준 적이 없어요. 울타리 너머 그들이 보게 될 세상이 궁금하지만 그저 상상만으로 만족할 뿐이에요. 천지를 뒤흔드는 자동차의 요란한 굉음, 덩치 크고 험상궂은 고양이와 개들, 낯선 사람들로부터의 위협, 저를 향한 세상의 노골적인 적의까지. 아직 바깥세상은 두려움의 영역이랍니다.

 엄마는 집을 떠났어요. 일주일에 한 번쯤 남자에게 간식을 얻어먹기 위해 들르죠. 마치 손님처럼 말이에요. 남자의 말에 따르면 사료를 주고 돌봐주는 사람이 또 있는 것 같대요. 그러니까 두 집 살림을 하는 셈이죠. 길고양이의 모성애는 길지 않아서 태어난 지 2~3개월이 지나면 젖을 떼고 새끼를 독립시킨다고 해요. 모유 수유가 끊기고 모성애에 관한 호르몬의 분비가 급격하게 중단되는 거죠.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새끼를 독립시키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곤 하지만 제 입장에선 냉혹한 현실임에 틀림없어요. 전 아직도 엄마의 품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배울 것도 많이 남았고 홀로 선다는 것은 늘 두려워요. 하루는 젖을 빨기 위해 품을 파고들었는데 하악 소리를 내며 저를 밀어내더군요. 마냥 받아주고 곁을 주던 엄마가 순간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어요. 제 털을 핥아 정성껏 씻겨주던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변해버린 엄마가 무섭고 서러워서 종일 울었어요. 목이 터져라 울면 그 소리를 듣고 혹시라도 엄마가 돌아올까봐. 더이상 울 힘도 없으면 지쳐 잠들곤 했죠. 왜 나는 이렇게 작고 유약한 모습으로 태어난 걸까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탈모야, 탈모야! 오늘도 남자는 몇 번씩이나 형제들에게 간식을 주며 저의 자취를 찾아요. 제 실재를 인정해 주는 유일한 존재. 그 측은지심이 고마워서 나갈까도 했지만 마음을 주는 일은 버림받는 것과 동일 선상에 있기에 망설여진답니다. 마음을 열고 깊은 곳까지 영역을 허락했다가 남자마저 떠난다면 다시 홀로 남겨져야 하잖아요. 만남과 헤어짐, 탄생과 죽음, 그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하지만 아가인 내게는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예요. 남자가 책상에 앉아 진득하게 일하지 못하고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들락거리는 이유를 말해줄까요. 숫제 눈코 뜰 사이 없으면 밖에 나올 생각조차 못하거든요. 어중간하게 시간의 공백이 있는 날, 이런저런 근심과 염려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하면 꼭 고양이를 보러 나오는 거예요. 남자는 대범하지 못하고 마음이 여려서 고민의 제목도 참 다양해요. 직장 내 업무와 대인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부터 시작해서 아이가 안 생기는 현실,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한 부동산 투자(아니, 지가 해놓고!)를 포함한 미래의 불확실성. 무엇보다 지금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자를 늘 불안하게 하죠. 맑고 서늘한 바깥 공기를 취한 다음 고양이 앞에서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쏟아 놓고 나면 마음에 평안이 겨우 찾아오나 봐요. 고작 츄르 하나 주면서 마음의 치유와 안식을 얻고 돌아가다니 불공정 거래 아닌가요. 간식의 양과 질을 높이든지,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하는 게 매너 아니겠어요.

 오늘부터 제 이름은 탈모예요. 기분 더럽지만 그냥 탈모 할게요. 어차피 엄마는 이름을 지어줄 것 같지 않아요. 남자가 그러더군요. 넌 버려진 게 아니라 독립한 거라고. 언젠가는 엄마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그거 알아요?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존재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거. 추남의 작명 센스는 구제불능이지만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있죠. 탈모(脫毛)는 털이 빠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탈모(脫帽), 모자를 벗는다는 뜻도 존재하죠. 고양이는 성장하면서 눈의 색이 바뀌기도 하고 털이 빠지면서 전체를 꾸미는 모색이 달라지기도 한답니다. 만약 머리의 검은 털이 빠지게 되면 모자를 벗게 되는 꼴이 되겠죠. 아이를 상징하는 모자를 벗어버리고 저도 언젠가는 어른이 될 거예요. 시궁창 같은 현실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에요. 남자는 절망과 포기를 낙관과 긍정으로 변환하는 법을 알려주거든요. 참, 남자의 이름도 '쫓을 추'를 써서 못생긴 남자에서 쫓는 남자로 바꿔주려고 해요. 무엇을 쫓는가는 남자의 선택과 마음가짐에 달려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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