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고래 후기

by 배중굥


천명관 작가님의 <고래>.
수많은 이들이 ‘인생 소설’이라 말하는 이 작품을 나 역시 뒤늦게 읽었다.

최근 들어 유독 화제가 되며 최신작처럼 느껴졌지만, 실은 2004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다만 2023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다시금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나 역시 그 무렵 이 책을 알게 되었지만, 초반의 다소 거친 표현에 잠시 덮어두었다가 최근에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시 읽은 과거의 나 칭찬해.


이야기는 금복과 춘희, 두 모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가족 서사로 요약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래는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려는 순간 이미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이야기 그 자체의 힘에 있다. 마치 작가가 독자를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쉬지 않고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천명관은 서사 중간중간 화자로 등장해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다.
“독자들은 혹시 잊은 건 아니겠지?”
이런 개입조차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그 특유의 말맛과 리듬 덕분이다.

유의어를 반복해 만들어내는 익살과 코믹함도 인상적이다. 자칫 과해질 수 있는 지점에서도 작가는 정확히 선을 지킨다. 담담한 얼굴로 웃긴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처럼, 절제된 유머가 오래 남는다.

고래에는 판타지적 요소가 등장하지만, 그 또한 절묘한 균형 위에 놓여 있다. 개연성을 넘을 듯하면 다시 현실로 끌어당기고, 현실에 너무 밀착될 것 같으면 살짝 띄워 올린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모든 판타지는 정말로 현실 밖의 것이었을까.

근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소설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다. 인간의 결핍과 욕망, 그리고 부조리한 삶에 대한 집요한 탐구. 작가의 말처럼, 이야기는 삶에서 인생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오래된 방식인지도 모른다.

우리네 삶에서 이야기는 왜 필요한가.
이 질문 앞에서 고래만큼 오래, 그리고 깊게 버티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인간이 살아온 방식과 욕망, 우스움과 비극이 이토록 풍성하게 엮인 이야기를 나는 쉽게 떠올리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고래를 써낸 천명관은 분명,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 중 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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