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괜찮았다. 커피도 마셨고, 별일 없이 출근했고, 오전 내내 나름 집중해서 일했다. 그런데 점심 무렵 누군가 툭 던진 말 하나가, 별 뜻도 없었을 그 말 한 마디가, 오후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이 자꾸 떠올랐고, 자려고 누웠는데도 그 장면이 다시 재생됐다. 나는 왜 이럴까, 싶었다. 별것도 아닌 말에 이렇게 흔들리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다.
이상한 게 아니다. 다만, 그 말이 당신 안의 어떤 오래된 것을 건드렸을 뿐이다.
뇌는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동등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편도체(amygdala)라는 구조물이 있는데, 뇌의 측두엽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 아몬드 모양의 신경 조직은 감정적으로 중요한 자극을 감지하는 일을 한다. 특히 위협적이거나 고통스러웠던 경험과 연결된 자극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뇌 구조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시각 정보가 시각 피질을 거쳐 인식되기도 전에, 편도체는 이미 그 자극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있다.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가 말한 "낮은 길(low road)"이 바로 이것이다.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그 말이 당신을 흔든 것은, 그 말 자체의 무게 때문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 말이 닮아 있는 과거의 어떤 말, 과거의 어떤 표정, 과거의 어떤 순간과 편도체가 연결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편도체는 현재와 과거를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한다. 비슷한 감각적 단서가 들어오면, 과거에 그와 연결된 감정 기억을 현재의 반응으로 불러낸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의 그 말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촉발한 훨씬 오래된 기억의 감정에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코르티솔이 관여한다. 편도체가 위협을 감지하면 시상하부(hypothalamus)를 통해 HPA 축(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이 활성화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코르티솔은 몸을 각성 상태로 유지시키면서 동시에 기억 공고화에도 관여한다. 감정적으로 강렬했던 경험일수록 더 선명하게 기억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데, 역으로 말하면 오래전의 고통스러웠던 장면들이 코르티솔과 함께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것과 유사한 자극이 들어올 때 뇌는 그 오래된 반응 패턴을 다시 꺼내 든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이다. 감정 처리의 신경 회로는 생후 초기부터 아동기에 걸쳐 형성되는데, 이 시기에 반복적으로 경험한 감정적 환경이 편도체의 반응성 자체를 조율한다. 비판받는 일이 잦았거나, 감정이 무시되거나 부정되는 환경에서 자랐거나, 예측할 수 없는 감정적 분위기 속에 오래 놓였던 사람은 편도체가 더 예민하게 조율될 수 있다. 이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가 그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그 환경에서는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아야 했고, 표정 변화 하나, 목소리 톤의 미세한 변화도 빠르게 읽어야 했기 때문에, 신경계는 그렇게 훈련됐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그 말 하나에 하루를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약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신경계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남아온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 예민함이 결점이 아니라 적응의 산물이었던 것처럼, 지금의 반응도 어느 시절의 당신이 만들어낸 생존의 방식이었다.
물론 그 방식이 지금도 필요한지는 다른 문제다. 어린 시절의 환경은 지나갔는데, 신경계는 아직 그 시절의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발달하면서 감정을 조절하고 맥락을 판단하는 능력이 생기지만, 편도체가 먼저 반응하는 속도를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머리로는 "별일 아니야"라고 알면서도 몸과 감정은 이미 반응이 끝나 있는 것이다.
하루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 때, 그 말을 되새기며 자신을 탓하는 대신 잠깐 멈추고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이 감각이 지금 이 말 때문인가, 아니면 이 말이 닮아 있는 더 오래된 무언가 때문인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편도체의 반응에 전전두엽이 조금씩 개입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감정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려는 시도가 신경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응을 멈출 수는 없어도, 반응을 이해하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하루 무너진 것도, 사실은 당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