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체는 과거와 현재를
구별하지 못한다

by 글꽃쌤

어떤 장면에서 갑자기 심장이 빨라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별일 없이 지나가던 하루였는데, 누군가의 목소리 톤이, 혹은 특정한 냄새가, 혹은 아무 이유 없이 느껴지는 공기의 무게가 갑자기 몸을 긴장시키는 순간. 무엇 때문인지 설명할 수 없어서 더 당황스러운 그 반응. 지금 이 상황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몸은 이미 전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은 느낌. 이것이 왜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려면, 편도체가 시간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편도체(amygdala)는 현재와 과거를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편도체는 시간 정보를 처리하는 구조물이 아니다. 편도체의 일은 들어오는 자극이 위험한지 안전한지를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고, 그 판단의 근거는 과거에 비슷한 자극과 함께 경험했던 감정 기억이다. 어떤 자극이 들어오면 편도체는 기억 저장소를 빠르게 훑으며 묻는다. 이것과 비슷한 것을 전에 경험한 적 있는가. 그때 어땠는가. 만약 과거의 비슷한 경험이 고통스럽거나 위협적이었다면, 편도체는 지금 이 자극도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즉각 반응을 시작한다. 그 판단은 지금이 그때와 다른 상황인지, 그때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이 신경학적으로 가능한 이유는 편도체가 해마(hippocampus)와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해마는 경험을 시간 순서와 맥락 안에 배치하는 일을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난 일인지를 기록하는 것이 해마의 역할이다. 반면 편도체는 그 경험의 감정적 강도와 의미를 저장한다. 시간적 맥락 없이 감정의 각인만 남는 것이다. 그래서 해마가 손상되면 사건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그 사건과 연결된 감정 반응은 남아 있는 경우가 생긴다. 감정 기억과 사실 기억은 서로 다른 경로로 저장되고 인출된다.


일상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어린 시절 특정한 목소리 톤으로 자주 비판받았던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와 비슷한 톤의 목소리를 들으면 편도체가 먼저 반응한다. 그때의 공포나 수치심이 지금 이 순간에 소환되는 것이다. 중요한 발표 앞에서 이유 모를 공포가 엄습하는 것도,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무심한 한마디에 생각보다 큰 상처를 받는 것도, 특정한 공간이나 냄새가 기분을 갑자기 바꾸는 것도 모두 같은 원리다. 편도체는 현재의 자극에서 과거의 위협을 읽고 있다.


이 반응이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연결된 경우다. 뇌가 발달하는 초기 시기에 형성된 감정 기억은 더 깊이 새겨지는 경향이 있고, 그 시기에는 해마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맥락적 기억보다 감정적 각인이 더 강하게 남는다. 어린 아이는 무서웠던 경험을 언제, 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났는지로 정리하기보다 그냥 무서웠다는 감각으로 저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 감각이 성인이 된 후에도 비슷한 자극이 들어오면 시간을 건너뛰어 소환된다.


그렇다고 이 반응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편도체가 과거의 위험 신호를 현재에도 유지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보면 생존에 유리한 설계였다. 한 번 위험했던 것은 다음에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됐다. 문제는 그 설계가 과거의 환경에는 맞았지만, 지금의 환경에는 맞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위험이 사라진 후에도 경보는 계속 울리고, 그 경보가 현재의 삶을 자꾸 과거의 방식으로 읽게 만든다.


이것을 알고 나면, 갑자기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지금 내가 반응하는 것이 정말 지금 이 상황 때문인가,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이 과거의 어떤 장면을 건드린 것인가. 그 질문이 쉽게 답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지금의 반응이 전적으로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편도체의 반응에 전전두엽이 조금씩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몸이 과거에 머물러 있을 때, 마음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현재에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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