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 사실은 아니다

by 글꽃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할 때 그 확신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원래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는 사람이야, 나는 원래 뭔가를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야, 나는 원래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이야. 이런 문장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사실처럼 느껴질 때,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누구의 말에서 시작된 것인지, 정말로 증거가 있는 것인지를 물어보는 일은 드물다. 그냥 그런 사람인 것 같고, 그렇게 살아온 것 같고, 그것이 나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나에 대해 믿어온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심리학에서 자기 서사(self-narrative)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자신의 과거 경험들을 엮어서 만들어낸 이야기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일관된 설명이다. 이 서사는 단순히 기억의 집합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석의 산물이다. 같은 사건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자기 이야기의 재료가 된다. 발표를 망친 경험이 나는 긴장을 잘 하는 사람이야라는 이야기로 굳어지기도 하고,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이야라는 이야기로 지나가기도 한다. 어떤 해석이 선택되느냐는 그 순간의 감정 상태, 이전의 비슷한 경험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


댄 맥아담스(Dan McAdams)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이야기 구조를 따른다고 말한다. 뇌는 경험들을 인과적으로 연결하고 일관된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것이 정체성의 신경학적 기반이 된다. 자기 관련 정보를 처리하는 내측 전전두엽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이 서사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서사는 한번 형성되고 나면 그것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경험을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나는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이야라는 서사가 자리잡고 나면, 관계에서 거절당한 경험은 그 서사의 증거로 강하게 기억되고, 사랑받은 경험은 예외나 우연으로 처리되기 쉽다.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을 확인해주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고, 그 믿음에 반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인지적 경향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에도 이 편향이 강하게 작동한다. 나는 뭔가를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야라고 믿는 사람은, 끝까지 해낸 경험들은 그건 쉬운 거였으니까라고 처리하고, 중간에 포기한 경험들은 역시 나는 그런 사람이야라는 서사의 증거로 수집한다. 서사는 이렇게 스스로를 강화하면서 점점 사실처럼 굳어진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서사의 많은 부분이 자신의 경험에서 직접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중요한 타인들, 부모, 교사, 형제자매, 또래들이 우리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했던 방식이 내면화되어 자기 서사의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너는 왜 이렇게 소심하니, 너는 형보다 못해, 너는 이런 걸 잘 못하잖아. 이런 말들이 반복되면, 아이는 그것을 타인의 의견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사실이 자기 서사의 출발점이 된다. 지금 내가 나에 대해 믿고 있는 이야기의 일부는, 사실 오래전 누군가의 말을 내가 사실로 받아들인 것일 수 있다.


신경가소성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 서사는 바꿀 수 있다. 뇌는 새로운 경험과 반복적인 해석의 변화를 통해 기존의 신경 회로를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평생 유지한다. 자기 서사를 바꾸는 것이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의 문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강화되어온 신경 회로의 패턴을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는 과정이고, 그래서 시간이 걸리고 반복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자기 서사를 다시 보는 첫 번째 작업은 그것을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문장이 올라올 때,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 누가 처음 그 말을 했는지, 그 반대의 증거는 없는지를 천천히 물어볼 수 있다. 서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자기 자신을 보려는 시도라는 것을 알고 나면, 그 질문이 조금 덜 두렵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나에 대해 믿어온 이야기는 나의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환경이 나에게 가르쳐준 이야기의 한 버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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