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가장 가혹하게 대할 때

by 글꽃쌤

누군가 친한 친구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해보자.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잘 안 됐거나, 중요한 약속을 잊었거나, 관계에서 상처를 줬거나.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건넬 것인가. 아마 대부분은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너무 자책하지 마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할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자기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는 어떤가. 친구에게 했을 말과 같은 말을 자신에게도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친구에게는 따뜻하게 대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가장 가혹한 비판자가 되는 이 기묘한 이중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들은 대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나한테 엄격해야 발전하지, 내가 나를 봐주면 누가 나를 잡아주겠어, 스스로에게 관대하면 나태해진다. 이런 믿음들이 자기 가혹함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믿음들이 실제로 사실인지, 자기에게 가혹한 것이 정말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의 자기자비 연구는 이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들을 축적해왔다. 자기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들이 더 높은 성취를 이루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성적인 불안과 우울,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완벽주의적 회피 경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반면 실수를 했을 때 자기 자신에게도 친구에게 하듯 따뜻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더 빠르게 회복하고, 다시 시도하는 동기가 더 강하게 유지된다. 자기자비가 나태함이 아니라 오히려 회복탄력성의 신경학적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경학적으로 가능한 이유가 있다. 자기 가혹함은 뇌의 위협 시스템(threat system)을 활성화시킨다. 편도체가 관여하는 이 시스템은 외부의 위협뿐 아니라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에도 반응한다. 내가 나를 공격하는 것을 뇌는 외부의 공격과 유사하게 처리한다. 그 결과 코르티솔이 분비되고 몸은 방어 태세를 취하며, 인지적 유연성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은 좁아진다. 위협 상태에서 뇌는 생존에 집중하기 때문에, 자기 가혹함이 지속되는 동안 뇌는 사실 성장보다 생존 모드에 가까운 상태로 작동하고 있다.


반면 자기자비적 반응은 포유류의 돌봄 시스템(care system)을 활성화시킨다. 옥시토신과 같은 친사회적 신경전달물질이 관여하는 이 시스템은 안전감과 연결감을 만들어내고, 위협 시스템의 활성화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타인에게 따뜻한 말을 건낼 때 활성화되는 이 회로는 자기 자신에게 같은 방식으로 반응할 때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뇌는 그 따뜻함의 대상이 타인인지 자기 자신인지를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자기 자신에게는 이 따뜻함을 적용하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여기에는 몇 가지 층위가 있다. 가장 깊은 곳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다. 실수했을 때 가혹하게 대해진 경험이 반복된 사람은 그 반응을 내면화한다. 외부에서 들어온 가혹한 목소리가 내면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한때 타인의 것이었던 엄격함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또 하나는 문화적 학습이다.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것을 이기적이거나 나태한 것으로 보는 시선이 내면화되어, 자기자비를 허락하는 것 자체에 죄책감이 따라오는 경우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해보면, 그것이 실수의 크기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은 실수에도 한참을 자책하거나, 오래전 일을 다시 꺼내 스스로를 몰아붙이거나, 충분히 잘한 일에도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오는 것.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지금 이 실수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작동해온 자기 처벌의 회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가혹함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어온 시간이 길수록, 부드러움이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뇌는 위협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안전감 속에서 자란다. 자기 자신에게 가혹한 것을 멈추는 것이 나를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자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오래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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