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이 잘 풀리면 곧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이 따라오고, 누군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저 사람이 왜 저러지 싶은 의심이 먼저 든다. 칭찬을 들으면 진심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조용한 날이 이어지면 곧 무언가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정적인 사람, 비관적인 사람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세상을 읽는 방식의 문제다.
인간의 뇌에는 부정적인 자극에 더 강하게, 더 오래 반응하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다. 심리학에서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인 정보가 동일한 강도로 주어졌을 때 부정적인 정보가 더 크게 처리되고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을 말한다. 폴 로진(Paul Rozin)과 에드워드 로이즈먼(Edward Royzman)의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인 사건은 동등한 긍정적 사건보다 심리적으로 더 강한 영향을 미치며, 이것은 문화와 개인차를 넘어 인간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경향이다. 진화적으로 보면 이것은 합리적인 설계였다. 위험을 놓치는 것이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던 환경에서, 뇌는 위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조율되어 왔다.
문제는 이 설계가 현대의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오늘 열 가지 일이 있었는데 아홉 가지가 잘 됐고 하나가 잘못됐다면, 잠자리에서 떠오르는 것은 대개 그 하나다. 누군가 열 마디를 했는데 아홉 마디는 평범하고 하나가 날카로웠다면, 기억에 남는 것은 그 하나다. 이것이 나쁜 쪽으로만 해석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뇌는 그렇게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신이 유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뇌의 기본 설정이 그렇다.
그런데 이 기본 설정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훨씬 강하게 작동한다. 어린 시절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거나, 긍정적인 것을 기대했다가 실망한 경험이 많았거나, 좋은 것이 오면 반드시 나쁜 것이 따라왔던 패턴을 몸으로 학습한 사람들이다. 이런 경험들은 편도체의 반응성을 높이고 전전두엽의 감정 조절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신경 회로를 조율한다. 그 결과 부정 편향이 개인의 기본 설정보다 훨씬 강하게 작동하게 되고, 좋은 신호보다 나쁜 신호를 먼저, 더 크게 읽는 패턴이 자리를 잡는다.
귀인 양식(attributional style)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중요하다.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의 연구에서 출발한 이 개념은, 사람들이 일어난 사건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가의 패턴을 말한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안정적으로, 전반적으로 찾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에 더 취약하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왔다. 나쁜 일은 내 탓이고, 늘 그래왔고,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는 방식의 해석이 습관화되면, 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좋은 일은 우연이나 운이고, 나쁜 일은 나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비대칭적 해석이 굳어지는 것이다.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전전두엽은 편도체의 즉각적인 위협 반응에 맥락을 부여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만성적인 스트레스나 불안 상태에서는 이 조절 기능이 약화된다. 그 결과 편도체의 부정적 반응이 전전두엽의 검토 없이 더 직접적으로 행동과 해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쁜 쪽으로 먼저 해석하는 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절 자원이 소진된 상태에서는 뇌의 기본값인 부정 편향이 더 강하게 전면에 나온다.
그렇다면 이 패턴은 바꿀 수 있는가.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부정 편향 자체는 뇌의 보호 기능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편향이 현실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할 수 있다. 나쁜 쪽으로 해석하고 싶어지는 순간, 그것이 지금 이 상황의 실제 증거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뇌의 기본값이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를 잠깐 구별해보는 것. 이 구별이 쉽지는 않지만, 반복될수록 전전두엽이 편도체의 반응에 조금씩 더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좋은 일을 온전히 기뻐하지 못해온 시간이 길었다면, 그것은 당신이 행복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뇌가 너무 오랫동안 위험을 먼저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