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났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무서웠던 경험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강하게 화를 냈는데, 혼자 있을 때 돌아보니 그것이 분노라기보다 깊은 서러움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험. 화를 내고 나서 후련하기보다 더 공허하거나 슬퍼지는 느낌. 분노는 가장 앞에 나오는 감정이지만, 그 뒤에는 거의 언제나 더 오래된, 더 깊은 감정이 있다.
감정에는 층위가 있다. 심리치료 이론에서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것이지만, 신경과학적으로도 이것은 설명이 된다. 분노는 편도체가 위협을 감지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인데, 위협의 종류에 따라 분노 아래에 다른 감정들이 함께 활성화된다. 거절당했을 때의 분노 아래에는 두려움이나 수치심이 있고, 무시당했을 때의 분노 아래에는 슬픔이나 외로움이 있으며,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분노 아래에는 무력감이 있다. 분노는 이 더 깊고 더 취약한 감정들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왜 분노가 앞에 나오는가. 분노는 취약함을 드러내지 않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슬프거나 무섭거나 외롭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을 약하게 보이게 하고, 관계에서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게 만든다. 반면 분노는 공격적이고 강한 인상을 주며, 상대방을 물러서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진화적으로도 위협적인 상황에서 취약함보다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 그래서 뇌는 두려움이나 슬픔이 활성화될 때 그것을 분노로 변환하여 표출하는 패턴을 학습하기도 한다. 특히 어린 시절 취약한 감정을 드러냈을 때 안전하지 않은 반응이 돌아왔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패턴은 더 강하게 자리잡는다.
폴 에크만(Paul Ekman)이 구분한 감정의 층위와 레슬리 그린버그(Leslie Greenberg)의 감정 중심 치료(emotion-focused therapy)는 공통적으로 일차 감정과 이차 감정의 구분을 중요하게 다룬다. 일차 감정은 자극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응적인 반응이고, 이차 감정은 그 일차 감정을 가리거나 방어하기 위해 나타나는 반응이다. 분노가 이차 감정으로 작동할 때, 그 분노를 다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분노 아래의 일차 감정, 그러니까 더 오래되고 더 부드럽고 더 취약한 감정에 닿아야 진짜 처리가 시작된다.
이것을 일상에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분노가 올라올 때 그 아래를 들여다보려면 먼저 분노로부터 한 발짝 물러설 수 있어야 하는데, 분노는 그 자체로 강렬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 안에 있을 때는 아래를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분노가 지나가고 난 후,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을 때 물어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는가. 그 상황에서 분노 말고 다른 감정이 있었는가. 무섭지는 않았는가, 서럽지는 않았는가, 외롭지는 않았는가.
분노를 나쁜 감정으로 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분노는 경계가 침범당했을 때, 불공정한 일이 일어났을 때, 중요한 것이 위협받을 때 나타나는 정당한 반응이다. 다만 그 분노가 더 깊은 감정을 가리고 있을 때, 분노만 반복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그 더 깊은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화가 많은 사람은 사실 많이 아픈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 분노 아래에 있는 것을 누군가 먼저 봐줬다면, 그렇게까지 화가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