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말을 들었는데 어떤 날은 그냥 넘어가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마음에 걸린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날은 별일 아닌 것처럼 지나가고 어떤 날은 감당이 안 된다. 이것이 내가 변덕스럽거나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실 이것은 감정이 상황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감정 반응의 강도는 그날 신경계의 상태, 즉 감정의 역치(threshold)에 의해 크게 달라진다.
감정의 역치란 어떤 자극이 감정 반응을 유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강도를 말한다. 이 역치가 높을 때는 웬만한 자극에도 감정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역치가 낮을 때는 작은 자극에도 강한 감정 반응이 일어난다. 같은 사람이라도 이 역치는 날마다, 상황마다 달라진다. 그리고 그 역치를 결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요인들이다.
수면이 가장 직접적이다. 수면 부족은 편도체의 반응성을 높이고 전전두엽의 감정 조절 기능을 약화시킨다. 매슈 워커(Matthew Walker)의 수면 연구에서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편도체가 부정적인 자극에 대해 최대 60퍼센트 이상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날 유독 감정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기분 탓이 아니라 신경학적 사실인 이유다.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잔 날, 사소한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혈당도 관여한다. 뇌는 포도당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데, 혈당이 낮아지면 전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된다. 전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편도체의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이 약해지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 배가 고플 때 짜증이 나는 것이 그냥 느낌이 아니라 신경생리학적으로 설명되는 현상이다. 영어로 hangry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도 이유가 없지 않다.
누적된 스트레스의 양도 역치에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코르티솔 수준이 높아지는데, 만성적으로 높은 코르티솔은 편도체를 더 예민하게 만들고 전전두엽의 감정 조절 자원을 소진시킨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시기에는 평소에 넘길 수 있던 것들이 넘겨지지 않는다. 역치가 낮아진 상태에서는 동일한 자극이 훨씬 크게 느껴지고, 이것이 지나친 반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진된 신경계의 정직한 반응이다.
사회적 연결감의 수준도 역치에 영향을 준다. 외롭거나 고립감을 느끼는 날에는 작은 거절이나 비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외로움이 신경계를 위협 탐지 모드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충분히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는 날에는 같은 자극이 덜 위협적으로 처리된다.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반응하는 자신을 탓하기 전에, 그날 신경계의 상태를 먼저 살펴볼 수 있다. 잠은 충분했는가, 밥은 먹었는가, 오늘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는가, 충분히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는가. 이 질문들이 지금의 반응이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소진된 신경계 때문인지를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쁜 날에 무너지는 것은 약해서가 아니다. 신경계도 자원이 있고, 그 자원이 다 쓰인 날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