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운 사람들이 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성숙한 것이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강한 것이라고. 그래서 화가 나도 참고, 슬퍼도 참고, 억울해도 참고, 무서워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다. 그렇게 참는 것이 몸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괜찮겠지만, 신경과학과 생리심리학이 말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감정을 참는 것은 그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제임스 그로스(James Gross)의 감정 조절 연구에서 억압(suppression)은 감정의 신체적 반응을 줄이지 못하면서 그 주관적 경험만 차단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쉽게 말하면, 화가 난 것을 참을 때 표정이나 행동은 억제할 수 있지만 심박수, 혈압, 근육 긴장, 피부 전도 반응 같은 신체적 각성은 오히려 유지되거나 증가한다는 것이다. 감정을 참는 동안 몸은 여전히 그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 의식에서 밀어낸 것이지, 신경계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만성적인 감정 억압은 자율신경계를 지속적인 긴장 상태에 놓이게 한다. 교감신경계가 계속 활성화된 상태가 유지되면서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지속적으로 분비되고, 이것이 신체 여러 시스템에 누적된 영향을 미친다. 면역 기능의 저하, 심혈관계에 대한 부담, 소화 기능의 장애, 만성적인 근육 긴장과 통증이 장기적인 감정 억압과 연관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참을수록 몸이 먼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심리신경면역학(psychoneuroimmunology)이라는 분야가 이 연결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왔다. 심리적 상태와 신경계, 내분비계, 면역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이 분야의 연구들은 만성적인 심리적 스트레스가 면역 기능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기에 자주 걸리거나 상처 회복이 느리거나 염증 반응이 잦은 것이 단순히 체력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감정을 참아온 사람의 몸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목, 어깨, 가슴, 복부는 감정을 자주 참는 사람들에게 특히 긴장이 쌓이는 부위다. 목과 어깨는 방어적 자세와 연결되고, 가슴은 감정적 표현의 억제와 연결되며, 복부는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집중되는 장소다. 만성적인 경직,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통증,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긴장이 이 부위에 있다면, 그것이 신체적 원인 외에 감정적 억압의 누적과 관련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모든 상황에서 가능하거나 적절한 것은 아니다. 참아야 할 때가 있고, 표현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다만 참는 것이 일상의 기본값이 되어 있을 때, 몸은 그것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혼자 있는 시간에 그 감정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다르다. 느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른 척하는 것 사이에는, 신경계에게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몸이 아프기 시작할 때, 가끔은 오랫동안 참아온 감정에게 물어봐야 할 때인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