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 사람의 표정이, 그날의 냄새가, 심지어 그때 신고 있던 신발의 감촉까지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반대로 분명히 있었던 일인데 아무리 떠올려도 흐릿하거나, 중요했을 것 같은 날이 오히려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 기억력의 차이로 설명하는데, 사실 이것은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무엇을 기준으로 기억을 저장하는가의 문제다.
뇌는 사실을 저장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실보다 감정을 먼저 저장한다.
해마(hippocampus)는 경험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일을 맡고 있고, 편도체(amygdala)는 그 경험이 감정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판단한다. 이 두 구조물은 해부학적으로 인접해 있고 기능적으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감정적 각성이 높을수록 편도체가 해마의 기억 공고화 과정을 강화시킨다. 다시 말해 어떤 경험에 강한 감정이 실려 있을수록, 그 기억은 더 깊이, 더 오래 새겨진다. 이것을 기억의 감정적 강화(emotional enhancement of memory)라고 한다.
그러니 선명한 기억이 곧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감정이 강하게 개입된 기억일수록 뇌는 세부 사항보다 감정적 핵심을 중심으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의 오랜 연구들이 보여주듯, 기억은 저장될 때부터 이미 편집되고, 꺼낼 때마다 다시 쓰인다.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거의 정확한 복사본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 현재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에 가깝다.
이것이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면, 꽤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와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서로 전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을 때,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 두 사람이 느낀 감정이 달랐기 때문에, 뇌가 저장한 것이 다를 뿐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한 기억이 형제자매마다 판이하게 다른 것도 같은 이유다. 같은 집에서 자랐어도 각자가 경험한 감정적 현실은 달랐고, 그 감정이 각자의 기억을 다르게 빚어냈다.
더 오래 생각해볼 지점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이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무엇이 나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기억에서 온다. 그런데 그 기억이 사실이 아니라 감정으로 재구성된 것이라면, 내가 나에 대해 믿어온 이야기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얼마나 많은 것이 그때의 감정이 만들어낸 해석인가.
가령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는 기억이 있다면, 그것이 사실의 기록일 수도 있지만, 어떤 특정한 순간에 느꼈던 강렬한 외로움이나 거절감이 기억 전체를 물들인 결과일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 가족은 화목했다"는 기억이 실제로는 불편했던 많은 순간들을 감정적으로 희석시킨 결과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기억이 그렇게 작동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억이 감정으로 저장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자신의 과거를 조금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그 장면이 그때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인정받고 싶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지, 그 상황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 기억이 가르쳐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부 사실로 받아들이기 전에, 잠깐 멈추고 물어볼 수 있다.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가. 그 감정이 이 기억을 어떻게 빚었는가.
기억을 의심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억 안에 담긴 감정을 먼저 보라는 것이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나면, 오래된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행사해온 힘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당신이 기억하는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