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 있다.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하니.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냥 넘기면 되잖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잘못된 것은 나인 것 같았다. 남들은 다 괜찮은데 나만 이렇게 작은 것에 흔들리는 것 같았고, 그 흔들림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일상이 됐다. 예민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늘 고쳐야 할 무언가처럼 들렸다.
그런데 예민함은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신경계가 환경에 적응해온 방식이다.
인간의 신경계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특히 감정 처리와 스트레스 반응을 담당하는 회로들은 생후 초기부터 아동기에 걸쳐 경험에 의해 조율된다. 이 시기에 어떤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느냐가 신경계의 반응성 자체를 형성한다. 감정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환경, 비판이 잦은 환경, 자신의 감정이 자주 무시되거나 부정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신경계는 작은 자극에도 빠르게 반응하도록 스스로를 조율한다. 위험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미리 감지하기 위해, 신경계는 그렇게 예민해지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학습한다.
이것은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의 작동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나뉘는데, 교감신경계는 위협에 대응하는 각성 상태를 만들고 부교감신경계는 안전한 상태에서의 이완과 회복을 담당한다. 스티븐 포지스(Stephen Porges)의 다미주 이론(Polyvagal Theory)에 따르면, 신경계는 환경의 안전 여부를 끊임없이 평가하는 신경지각(neuroception) 과정을 통해 자동적으로 반응 상태를 결정한다. 반복적으로 불안하거나 위협적인 환경에 노출된 신경계는 기준점 자체가 높은 각성 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 결과 비교적 중립적인 자극에도 교감신경계가 먼저 활성화되는 패턴이 자리를 잡는다.
그러니까 예민한 것이 아니라, 신경계의 경보 기준이 낮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화재경보기가 연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경보기가 고장난 것이 아닌 것처럼, 작은 자극에 크게 반응하는 신경계도 어떤 환경에서는 정확하고 합리적인 반응이었다. 문제는 그 환경이 지나갔는데도 신경계가 여전히 같은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의 그 집, 그 관계, 그 분위기는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몸은 아직 그 시절의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편도체(amygdala)의 역할도 여기서 빼놓을 수 없다. 편도체는 감정적으로 중요한 자극, 특히 위협과 관련된 자극에 빠르게 반응하는데, 반복적인 스트레스 경험은 편도체의 반응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신경 회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 반면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상황을 맥락적으로 판단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편도체 사이의 연결은 만성적 스트레스 환경에서 약화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더 격하게 반응하도록 뇌 자체가 조율되어 있고,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역사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고정된 운명은 아니라는 점이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개념이 보여주듯, 뇌와 신경계는 경험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평생 유지한다. 안전한 관계, 반복적인 조절 경험, 자신의 신경계 반응을 이해하고 천천히 다루는 과정들이 신경계의 기준점을 조금씩 이동시킬 수 있다. 빠르게 바뀌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그렇게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달라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민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을 탓해온 사람들에게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의 신경계는 당신이 살아온 환경에 최선을 다해 적응했다는 것이다. 그 예민함이 당신을 지켜온 시절이 있었다. 그것을 결함으로 대하기 전에, 그것이 어떤 시절의 어떤 선택이었는지를 먼저 이해해주는 것이 순서일 수 있다.
자신을 고치려 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는 것. 그것이 신경계에게도, 당신에게도 더 안전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