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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화폐가 가진 다양한 의미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4단계 BK21

동아시아 SAP 융합 인재 양성 사업팀

김유정 (석사과정, 참여대학원생) 



(분포도 데이터베이스는 동아시아 SAP 융합 인재 양성 사업팀에서 진행하는 외래계유물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였습니다.)


  고대 동아시아 각국과 한반도의 국제 교류를 이해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확인되는 외래계(外來系) 유물에 대해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확인되는 가장 대표적인 외래계 유물은 화폐(貨幣)입니다. 화폐는 상품 교환 가치의 척도가 되며 그것의 교환을 매개하는 일반화된 수단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한반도 내에서 출토되는 고대의 화폐들은 과연 교환의 수단이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을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된 화폐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한반도 출토 중국화폐(오수전, 반량전, 왕망전)

 

 삼한시대 한반도 남부에서는 당시 중국의 화폐인 반량전, 오수전, 왕망전이 발견되었습니다.

한반도 출토 화폐 분포도

  우선 화폐들이 출토된 분포를 보면, 이들은 제주 및 한반도 남부의 해안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경산, 완주 등을 비롯한 내륙지역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 화폐가 출토된 유적 성격에서도 차이점이 확인됩니다. 제주 및 한반도 남부 등의 해안지역에서는 주거지나 패총(조개더미)유적이 주를 이루며(주거지: 강릉 초당동, 인천 운북동/패총: 사천 늑도, 김해 회현리, 해남 군곡리, 창원 성산 패총 등), 내륙지역은 목관묘나 토광묘의 무덤유적이 다수인 점이 돋보입니다. 

  해안가(주거지나 패총)를 중심으로 확인되는 화폐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제주도 산지항 등에서 확인되는 화폐 중에서는 글자 옆에 원형의 구멍을 뚫은 사례가 확인됩니다(이청규・강창화, 1994).




  제주 산지항은 해안가에 구덩이를 파서 화폐를 매납한 유적입니다. 이 유적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곤란하나, 출토된 화폐 중에서 인위적으로 구멍을 뚫은 화폐가 확인되어 당시에 제의를 위한 용도였지 않을까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김해 회현리 패총 역시 의도적으로 일부가 깨어진 상태로 화폐가 출토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안전한 항해를 위한 기원행위에 화폐가 이용되기도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권욱택, 2014).


  무덤에서 출토된 경우는 대부분이 1~3점으로 소량이 출토되었습니다. 경산 임당 유적에서 출토되는 화폐는 철검 사이에서 출토되었는데, 이를 통해서 당시 화폐를 칼집에 매달아서 장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이영훈·이양수, 2007). 경산 양지리 1호 목관묘에서는 동과초 앞 뒤 양면으로 오수전이 13점씩 부착되어 출토되었습니다 이 역시 화폐를 장식으로 사용한 사례입니다. 이들의 사례는 화폐가 당시 무덤에 장식용, 부장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해남 흑천리 마등 1호 토광묘에서는 화천 13점이 바닥 중앙에 옥 구슬과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역시 피장자를 안치할 때 부장품으로 쓴 것으로 판단되며, 특히 노잣돈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김미도리·조연태·이양수, 2020).


  화폐를 실제 교환의 수단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경우는 아무래도 다량의 수량이 확인되는 경우일 것입니다. 광주 복룡동 2호 토광묘의 경우는 무덤에서 출토되었으나, 화폐가 실에 꿰어진 상태로 출토되었습니다. 이렇게 실에 화폐를 꿰는 것은 당시 중국의 화폐 유통 방식이며, 화폐가 교역 등의 실생활에서 사용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영훈·이양수, 2007). 그러나 무덤에서 확인된 점을 고려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역적인 요소와 함께 부장용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산 양지리 1호 목관묘 출토 오수전 부착 칠과초


  한반도 출토 화폐유적 중 가장 압도적인 수량을 자랑하는 여수 거문도에서는 오수전이 980점 수습되었습니다. 이들은 발견 당시에 나무판자와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에 난파선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김경칠, 2007; 이영훈·이양수, 2007). 이와 같은 경우를 생각한다면 당시 한반도와 중국이 직접적으로 교역을 진행하였거나, 한반도가 중국과 다른 나라와의 중개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화폐는 상품 거래의 수단으로서 한반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래의 의미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거나, 위세품(威勢品)적 성격을 가지기도 하였고, 제의나 장식에도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즉 경제적인 수단이기도 하였으며, 나아가 당시 교류를 담당하는 지배계층이 자신들의 상징성을 보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활용되었습니다. 화폐는 당시 한반도 내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같은 유물일지라도 쓰이는 장소와 쓰는 사람에 따라서 쓰임새가 달라지는 것이 무척 흥미롭지 않나요? 
 





















□ 참고문헌 

권욱택, 2014, 『한반도·중국 동북지역 출토 秦·漢代화폐의 전개와 용도』, 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권욱택, 2019, 「한반도 남부·일본열도 출토 漢代화폐와 용도-오수전·왕망전을 중심으로-」, 『嶺南考古學』 84, 嶺南考古學會

김경칠, 2007, 「南韓地域 출토 漢代 金屬貨幣와 그 性格」, 『湖南考古學報』, 27, 湖南考古學會

김미도리・조연태이양수, 2020, 「해남 흑천리 마등 4호 토광묘 출토 화천의 보전처리와 고고학적 분석」, 『박물관보존과학』 24,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문화재연구원, 2022, 『해남 흑천리 마등·영춘리 향촌 유적』

이영훈・이양수, 2007, 「한반도 남부 출토 오수전에 대하여」, 『永川 龍田里 遺蹟』, 國立慶州博物館

이청규・강창화, 1994, 「제주도 출토 漢代 화폐유물의 한 例」, 『한국상고사학보』 17, 한국상고사학회


□ 그림자료

e뮤지엄-제주 산지항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사천늑도유적

韓國土地公社·韓國文化財保護財團, 1998, 『慶山 林堂 遺蹟(Ⅵ)』, 學術調査報告 第5冊

성림문화재연구원, 2020, 경산 하양(무학)지구 택지개발사업부지 내 

『慶山 陽地里 遺蹟』, 聖林文化財硏究院 學術調査

報告 第 147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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