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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부터 튼튼하게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다!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4단계 BK21

동아시아 SAP 융합 인재 양성 사업팀

이소영 (석사과정, 참여대학원생) 



현대 도시에서는 고층 건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그런 건물을 지으려면 많은 자본과 인력이 필요하고, 건축 기술도 발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고층 건물을 짓기 어려웠으나, 우리는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고층 건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황룡사 9층 목탑’입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은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법사의 건의로 건립되기 시작해서 선덕여왕 14년(64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창건 당시의 황룡사 목탑의 규모를 ‘철반(鐵盤)(상륜부) 이상의 높이가 42척이고 이하는 183척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길이를 재는 기준이 달라서, 현재 남아있는 유물과 유구를 통해 길이의 기준을 알아내야 합니다. 『삼국유사』기록에 따르면 황룡사 목탑은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가 와서 세웠다는 기록을 보면, 황룡사목탑을 건립할 당시에도 백제의 길이 단위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백제에서 사용되었던 척 단위는 고구려에서 사용되었던 고려척(高麗尺)으로 그 길이를 cm 단위로 환산하면 약 35.051cm입니다(권학수, 1999). 따라서 황룡사 목탑의 높이는 약 78.86475m로 추정할 수 있고, 이는 오늘날의 아파트 30층 정도의 높이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황룡사 목탑은 고려 고종 25년(1238년)에 몽골의 침략으로 불에 타 사라지고 현재는 터만 남아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 우리는 황룡사 목탑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황룡사 터에 가면 목탑지가 평평하지 않고 우뚝 솟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기단(基壇)’입니다. 그리고 기단에는 계단도 함께 설치되어 있고, 기단 위에는 기둥을 받치는 초석과 심주(心柱, 목탑의 1층부터 꼭대기까지 뚫고 세우는 기둥)를 받치는 심초석도 함께 남아있습니다.


황룡사역사문화관 2층에서 바라본 황룡사 목탑지 (필자 촬영 및 편집)

기단은 건물이나 탑 등을 세우기 위해 주변 지면보다 높게 조성하거나 주위를 절토하여 낮게 해서 주변보다 높게 한 부분입니다. 기단은 상부 목조건축의 하중을 받아 지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지표면 보다 높여 상부구조를 우수 등 외기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리고 건축 영역을 구분 짓기도 하고 영역 내에서 건축물의 위계를 설정하는 기능도 합니다. 이러한 기단은 과거의 목조 건물의 모습을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이처럼 기단은 황룡사 목탑을 세울 때 아주 중요한 시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황룡사의 기단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황룡사가 위치한 곳은 원래 늪지여서 땅이 무르기 때문에 여기에는 바로 건물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세우기 전에 점토를 쌓아서 땅을 단단하게 만든 다음에 진흙층까지 땅을 파고 다시 점토와 자갈을 번갈아서 쌓았습니다.


황룡사 목탑지 토층도  (출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21 인용 및 필자 편집)


  이렇게 해서 높은 탑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땅과 기단을 만들고 무너지지 않게 기단 외장을 설치한 다음 탑에 출입할 수 있는 계단도 만들었습니다. 기단을 쌓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황룡사 9층 목탑의 기단과 계단은 발굴조사 결과 ‘가구식(架構式)기단·계단’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존하는 사찰 중 가구식기단과 계단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찰은 불국사 대웅전이 있습니다. 가구식기단은 목조건축의 구조를 본따서 마치 블록을 조립한 것처럼 석재 조각을 가공해서 조립한 형태인데, 지대석, 면석, 우주석, 탱주석, 갑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구식계단은 지대석, 면석, 사갑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기단과 계단은 황룡사 내부와 금당지, 강당지 등에서도 확인되며, 통일신라 이후에도 궁궐, 사찰 등 왕경의 주요 건축물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래서 황룡사의 건축이 이후 신라의 건축 문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가구식기단 및 계단 개념  (사진: 불국사 대웅전 기단 및 계단,  사진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인용 및 필자 편집)


  물론 황룡사 목탑지를 발굴했을 때는 기단과 계단이 온전히 남아있지 않았지만,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석재를 통해 기단과 계단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추정 복원할 수 있습니다. 고증 결과 황룡사 목탑은 탑이 세워진 구역을 알려주는 탑구(塔區)가 두 번 돌아가고 그 위에 가구식기단과 계단을 만든 다음에 기단 위에 64개의 초석과 심초석을 설치하고 탑의 상부구조를 올린 형태라고 합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21).


황룡사 목탑 고증안  (출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21 인용 및 필자 편집)


  발굴조사를 통해 고고학자가 복원할 수 있는 황룡사 목탑의 모습은 하부구조까지이지만, 고건축 전문가와 공동 연구를 통해 목탑의 상부구조 복원을 목표로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황룡사지 역사문화관에서 그러한 복원연구의 과정이 1/10 크기로 복원해 놓은 다양한 목탑 복원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많은 연구성과도 국립문화재연구원의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문화재청에서도 황룡사 복원을 추진하고 있고 이를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니, 독자 여러분도 언젠가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황룡사를 기대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황룡사역사문화관 황룡사 9층 목탑 축소 복원 모형 (필자 촬영)



□ 참고문헌 

권학수, 1999, 「황룡사 건물지의 영조척 분석」, 『한국상고사학보』 31권, 한국상고사학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4, 『동궁과 월지Ⅱ』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21, 『황룡사 회랑 내곽 건물지 기단 고증 연구』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한국 고대 건축의 기단』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82, 『황룡사 유적발굴조사보고서Ⅰ』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main/?v=1671008416404)

『삼국유사』(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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