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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값

by 은월 김혜숙


일이라고는 몰아서 가는

번잡한 삶을 벅벅 기어가듯

남한강을 스치며 가다

곤지암 도로변에

감, 마흔 개 씨 없는 감

판자에 아무렇게 쓰여있다

.

돌담 안에 늙어서 구부정

굽은 등을 밖으로 얼굴 내민

감나무가 한없이 꺼억꺼억

울었다 까치가 운 것처럼

아들 못 낳고 울던 할머니의

속내가 거기에 있었다

그 씨가 없어 울었던

.

순리를 저버리고 세상에

죄를 짓고도 붉고 달큼하게

젖무덤을 내내 앓았을 저 영악한 삶

.

누가 여기 속 빈 강정으로

내 다 놓았단 말인가

.

즐비한 가을 나무들이

앞 다투어 제 몸을 자랑하는

그 강을 지나는 갓길에서

한참을 씨 없는 감 마흔 개가

세상과 감을 사 들고 가는

사람들을 조롱했다

씨 없는 감도 제값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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