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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에서

내가 백석 되어ㅡ이생진를 시를 읽고

by 은월 김혜숙


난 자야가 되어

성북동 길을 올라갔다

법정 스님의 인자한 미소가 와닿자

극락전을 보며 그의 삶을 타고 휘오리

되어 과거 속으로 급히 달려들듯하였다


그러자 마치 나도

마당에 떨어져 있는 꽃신 한 짝,

화들짝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뜰을 걸었다


그곳에 양팔을 벌리고 당나귀를 탄

흰 도포의 그분이 나를 반겼다

수줍어 돌아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보니 느티나무였다


난 자야가 아니었다

그저 그들을 흠모하는 관객일 뿐

법정께서 묵었다는 뜰을 지나

그들의 사랑과 무소유의

자취를 찾아온 나그네였다


전설과 같은 실화의 주인공 속에

난 하나의 시나 한 줄 쓰는 글쟁이로

영감 타다 고개를 숙이고

성북동 내리막길을 밤이 되어서야

내려왔다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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