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by 은월 김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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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좋다기에,
열풍이라기에,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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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싶어
조용히 극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울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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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소리 없이
사람을 울리는 영화가 있을까.
요란한 폭발도,
잔혹한 장면도,
과장된 사랑 고백도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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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더 세게 부수고,
더 빠르게 몰아치고,
더 자극적으로 뒤흔들어야
성공이라 말하는 시대라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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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영웅으로 세우지 않았다.
비극을 과장하지도 않았다.
대신, 유배지의 바람 속에 서 있는
한 인간의 외로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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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 위에 상상력을 얹은 팩션 사극이지만
그 중심에는 권력이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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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된 왕과
그를 살피고 감시해야 했던 또 다른 인간.
적도 아니고, 벗도 아닌 자리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시간.
그 조용한 감정의 결이
가슴을 서서히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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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호랑이 CG는 어색했다.
그러나 배우들의 눈빛이
그 허술함을 덮어버렸다.
특히 단종 배우 박지훈의 맑으면서도 비어 있는 눈,
엄흥도 배우 유해진의 눌러 담은 체념과 온기,
그리고 이를 묵묵히 이끌어간 장항준 감독의 연출은
왕의 비극을 신파가 아닌 인간의 슬픔으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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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역사 속에서 희생된 존재의
고요한 인간애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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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와
다시 단종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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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이
공부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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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는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고,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오늘 나는
역사적 정치성 수양대군이니 한명회니
뭐 숱하게 공부했지만
다시 머리에 담긴 여운
우리만의 역사적 감정이
저 토록 처절할 수 있나
일깨운
그런 영화를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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