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느낀 고요의 철학
경주는 자주 찾는 휴가지다.
신라의 천년 수도이자,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도시라는 설명은 이제 익숙하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반복해 찾는 이유는 단지 유적 때문이 아니다.
경주는 나에게 설명할 수 없는 정서적 고요와 내면의 평화를 안겨주는 장소다.
그 감각은 마치 태아가 자궁 속에서 듣는 잔잔한 물소리와 같다.
현실의 소음을 밀어내고, 깊은 침묵 속으로 나를 이끈다.
펜션의 정원에 나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주변을 바라본다.
내가 사는 바닷가 도시 인천과는 전혀 다른 감각들이 감지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차이는 지형이다.
경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북쪽으로는 토함산, 동쪽으로는 감은산, 남쪽으로는 남산, 서쪽으로는 무열왕릉 주변의 능선이 둘러싼다.
이 구조는 외부의 바람과 기운이 강하게 드나드는 것을 막고, 공기의 흐름마저 느리게 만든다.
소리는 흩어지지 않고 머문다.
그 결과, 도시 전체에 고요가 깃든다.
이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다.
삶의 방향을 안으로 향하게 하는 질서다.
외부 세계를 향하던 감각이 안쪽으로 접히면서, 나는 나를 다시 살피게 된다.
경주는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내면을 지키는 공간이다.
현대 도시는 늘 바깥을 향하지만, 이곳은 안쪽을 응시하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곳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마주한다.
그러나 문득 묻게 된다.
왜 하필 경주인가.
왜 이 낯선 기후와 지형, 고요함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가.
그 이유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는 인간 본성의 일부를 떠올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다른 유전적 특성을 지닌 존재에게 끌린다.
예컨대, MHC 유전자처럼 면역과 관련된 유전자가 서로 다를수록 체취를 통해 더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생물학적 생존 전략이다.
또한 인간의 뇌는 새로운 자극, 낯선 환경에 도파민을 분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낯섦은 생명을 자극하고, 감각을 깨운다.
경주는 나에게 그런 장소다.
내가 살아온 익숙한 리듬과 전혀 다른 세계.
그 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새롭게 감각하고, 나를 다시 의식하며, 내 삶의 구조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철학적 실천이다.
우리는 왜 멀리 떠나는가?
그것은 익숙함 속에서 굳어버린 감각을 깨우고, 반복되는 사고의 틀을 흔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여행지는 내가 살아온 세계와 다른 곳일수록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도시에 사는 이가 또 다른 도시로, 시골에 사는 이가 또 다른 시골로 떠나는 여행은 익숙함의 연장이 될 수 있다.
반면,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공간으로 향하는 여행은 감각의 각성과 내면의 재구성을 가능케 한다.
다름은 자극이 되고, 낯섦은 사유의 문을 연다.
결국, 나는 경주에서 고요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 고요를 통해 내 삶의 속도와 방향을 되돌아본다.
그것은 낯섦 속에서 회복을 경험하는 일이며, 다름 속에서 나를 재발견하는 철학적 감응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곳을 찾는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