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열등감과 문화 자존의 사유
처음엔 별 기대 없이 데몬헌터스의 시청을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이고, K-팝을 소재로 했으며, 여자 아이돌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소에 아이돌 노래를 집안일할 때 흘려듣기는 하지만, 퍼포먼스나 댄스, 이미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이면 어딘가 전형적이고 유치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한참을 미루다가, 전 세계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뉴스를 접하며 뒤늦게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 콘텐츠는 넷플릭스에서 장기간 1위를 차지했고, OST는 북미를 포함한 글로벌 음악 차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애니메이션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유행 그 이상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이 작품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내 취향과는 다른,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청을 시작했다.
놀라웠던 건, 이토록 ‘한국적인’ 콘텐츠가 사실은 글로벌 협업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제작은 넷플릭스와 소니 픽처스, 감독은 드림웍스 출신 한국계 미국인 매기 강, 그리고 음악은 실제 K-팝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들이 참여해 완성했다. 말 그대로 기획부터 제작까지 국경과 장르를 넘나든 혼합의 결과였다. 나는 그 복잡한 조화 속에서 한류의 현재를 보았다. 자기 문화를 고립시키지 않으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와 섞이는 방식. 한국 문화는 지금, 고유성과 혼종성을 동시에 품은 유기체처럼 진화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영상이 시작되자 내 안에서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민망함이었다. 어디선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그 낯선 감정은 유치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 감정의 뿌리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기도 하다.
나는 기질적으로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고 있으면서도, 막상 칭찬을 받으면 민망해하는 사람이다. 혹시 많은 한국인도 데몬헌터스를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닐까? 우리가 직접 만들진 않았지만, 이 콘텐츠는 한국 문화를 다루고 있고, 애니메이션 곳곳에 한국의 관광지와 제품,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마치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홍보 영상 같다. 자랑스럽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어색하고 쑥스럽다. 너무 익숙해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던, 우리의 일상이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 우리는 당혹스러워한다.
한 사람을 떠올려 보자. 평생 자신은 평범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어릴 적부터 비교당했고, 주어진 환경은 남들보다 나았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늘 남들이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고, 닮으려 애쓰며 자신을 계발해 왔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당신은 특별하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믿기 힘들어 망설이고, 민망해하며, 오히려 몸을 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모습이 바로, 내가 본 한국인의 정서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구 문화를 선망하며, 우리 문화를 열등하게 여겨왔다. 판소리보다는 성악을, 창극보다는 오페라를, 한국 영화보다는 할리우드를, 우리 음악보다는 팝을, 우리 제품보다는 외국 명품을 더 고급스럽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사대주의적 정서는 잘못된 역사 교육과 식민지 경험을 통해 우리 정신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세계는 우리 문화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라 여겼고, 곧 꺼질 유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류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었다. 파도처럼 밀려온 이 흐름은 점차 강해졌고, 지금은 세계의 문화 지형을 바꾸는 물결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인 나는 여전히 이 현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내게는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이기에, 이 문화가 그렇게 특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마치 다이아몬드를 가진 부족이 그 가치를 모르고 돌처럼 여겼던 일화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축소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에게 세계는 끊임없이 말한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너는 아름답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말을 선뜻 믿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뿌리 깊은 의심으로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 불안과 수줍음이 세계인으로 하여금 우리를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한국은 겸손하지만 자기 가치를 알고 있는 민족이라고 세계가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나는 데몬헌터스를 보며, 그 민망함의 정체를 마주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오랜 문화적 열등감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그 안에서 자부심의 씨앗을 발견했다.
개인에게 완벽함이 없듯, 민족도 마찬가지다. 단점은 있지만, 그 안에 장점도 있고, 가능성도 있다. 데몬헌터스의 주인공 루미처럼, 우리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 한국이라는 문화 공동체가 오늘의 주목을 받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더 명확해진다.
조금 인기가 생겼다고 우쭐하거나, 세계가 알아준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겸손하게, 그러나 자신 있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우리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절대화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세계와 함께 미래를 창조해 나가기 위한 조건일 것이다.
이제 한국은 단순한 수출국이 아니라, 문화적 주체로서 인류 공동체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고립된 민족주의도, 열등감에서 비롯된 사대주의도 넘어, 세계와 나란히 설 수 있는 문화적 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온 인류를 하나의 문화 공동체로 묶을 그 구심점에 한국 문화가 존재하길, 그리고 그 흐름에 내가 함께하길 소망한다.
그 생각에 다다랐을 때, 나는 내 안에서 뜨겁게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꼈다.
나는 왜 데몬헌터스를 보고 민망했는가?
그 질문은 결국, 나는 내 문화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고,
그 답은 우리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조용히 일러주고 있었다.